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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직접 만든 짭조름한 샤퀴테리, 내추럴와인과 뜨겁게 포옹하네
2021년11월07일 13:18   조회수:64   출처:이우조아 포스트

와인이 없어 못 판다. 요즘 와인업계 이야기다. 코로나로 와인이 전성기를 맞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와인 수입액이 작년 동기 대비 2배에 달했다 한다. 이유는 여럿이다. 똑같은 와인도 10년 전보다 오히려 값이 싸졌다. 가격 하락은 수요의 증가로 이어졌고, 수입 물량이 커지면서 다시 단가 하락을 이끌었다. 독주를 기피하는 트렌드도 와인에 유리했다.


그렇다 보니 와인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식당에 사람들이 몰린다. 단지 와인을 싸게 팔아서 될 일은 아니다. 음식과 와인의 조화, 가격대, 서비스가 한꺼번에 어우러져야 사람들은 비로소 ‘편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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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흑석동 와인 바 ‘더큐어링’의 샤퀴테리 모둠.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서울 성수동 뚝섬역 근처 ‘카페테리아 라루나’는 이름부터 경계심을 낮춘다. 카페테리아라고 하지만 실제 파는 음식은 스페인 타파스, 그중에서도 핀초스를 주력으로 한다. 핀초스는 빵 위에 재료를 올려 먹는 타파스의 일종이다.


홍합, 연어, 푸아그라, 부라타 치즈, 안초비 등 다양한 식재료를 레고 조립하듯 창의적으로 섞었다. 스페인 고추인 피킬로페퍼를 절여 초록 올리브, 버섯, 안초비(염장해 올리브 오일에 담근 멸치)와 함께 빵 위에 올린 핀초스는 짭조름한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뒤이어 입안을 침으로 가득 메우는 감칠맛에 손이 저절로 와인 잔으로 향했다.


와인은 역시 스페인산이 주력이다. 차갑게 식힌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 카바(cava)를 곁들이니 성격이 분명하고 주장이 확실한 타파스의 맛에 탄력이 생겼다.


요즘 서울에서 가장 힙한 동네로 꼽히는 신용산으로 자리를 옮기면 홍대에서 이전한 ‘루블랑’이 있다. 내추럴 와인을 주력으로 하는 와인 바다. 내추럴 와인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와인 메이커마다 각자의 철학과 방법론이 있지만, 내추럴 와인을 맛보면 기존의 와인보다 발효에 의한 산미가 강하고 특유의 향이 난다.


통창을 크게 낸 루블랑은 내추럴 와인에 걸맞은 음식들을 메뉴에 올렸다. 수비드 삼겹살은 저온에서 조리해 부드러운 식감을 극대화했다. 블루베리 콤포트를 곁들여 단맛을 더했다. 기름진 맛과 단맛이 만나자 맛에 색채를 입힌 것처럼 화려하고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리 다리 콩피는 프랑스 비스트로에 언제나 있는 메뉴다. 수비드 삼겹살에 비해 짠맛이 더했고 오리고기는 결결이 저항감 없이 찢어졌다.


발레하듯 가볍게 혀 위에서 노는 내추럴 와인은 음식과 서로 포옹하며 어울리다가도 순간 거리를 두며 긴장감을 이루기도 했다. 그 맛의 밀도를 이기는 것은 젊음이었다. 홀을 가득 메운 남녀의 웃음과 눈빛은 와인이 필요한 이유를 말없이 증명했다.


한강대교를 건너 흑석동에 가면 ‘더큐어링(The Curing)’이 있다. ‘절인다’는 의미의 영어 ‘큐어링’을 상호로 썼듯, 이 집의 주력은 절이고 숙성한 가공육의 총칭인 샤퀴테리다. 고기를 고르고 염장한 뒤 몇 주, 몇 개월에 걸쳐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며 직접 샤퀴테리를 만들려면 사실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이 집의 주인장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음식 만드는 데 쓴다.


아스파라거스와 수란은 간단한 요리였지만 주인장이 웅변하는 철학을 담고 있다. 아삭한 식감, 하지만 분명히 익어서 풋내가 사라진 아스파라거스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조리한 음식이었다.


푸짐하게 접시에 올라온 잠봉(프랑스식 햄), 이탈리안 소시지, 베이컨을 먹노라니 유럽 축구 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빠르게 치고 달리며 몸과 몸을 사정없이 부딪치는 힘, 그러나 골문 앞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개인기에 열광하는 관중들. 접시에 올라온 샤퀴테리는 서로를 봐주지 않고 또 먹는 이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자존심이 있었다.


손님에게 와인 병을 열고 따르는 주인장은 그러나 자존심으로 도도하게 서있기보다 자세를 낮춰 손님과 눈을 맞췄다. 그가 따르던 와인은 섬세하면서도 강건하여 식사하는 내내 향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것을 열망하며 스스로를 헌신하는 이가 만든 음식도 그 향기와 함께 내 몸에 오래 남았다.


조선일보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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