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며느리
박일
예비 며느리
아들 녀석이 예비며느리를 집에 데리고 온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휴일 날 이른 아침부터 나와 마누라는 시장에 나가 장을 봐 온다 방안을 청소 하고 서재를 정리한다 하며 분주히 서둘렀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 집에 들어 올 며느리는 한국 가서 박사공부까지 한 먹물을 많이 먹은 처녀라고 한다. 한국 가서 그것도 박사공부까지 했으면 더 볼것도 없이 우리 민족의 예의범절같은건 몸에 뱄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누라도 나도 마음은 그냥 하늘의 구름처럼 둥둥 떠 있었다.
“ 어머? 오늘따라 당신 안하던 재간 다 피우시네.”
내가 마누라의 놀림을 받으며 마누라가 매일 앉는 화장대 앞에 앉아 얼굴이 보얗게 분도 바르고 머리가 까맣게 머릿기름도 바르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출입문을 열자 멀쩡한 아들이 앞서 들어오고 아들 뒤에 키가 쭉 빠지고 눈에 안경을 건 처녀가 따라들어 왔다.
“아버지 어머님 안녕하세요!”
처녀는 우리를 보고 환히 웃었다.
그 순간 나는 간이 덜렁했다. 처녀의 코등에 있는 좁쌀알만한 새까만 짐이 나의 눈을 무섭게 자극 했던 것이다...
지난해 여름, 내가 한국 서울에 가서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하고 중국으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내가 할빈행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으며 볼라니 옆자리엔 눈에 안경을 건 훤칠한 처녀가 먼저 앉아있었다. 얼핏 처녀를 쳐다보니 코등에 새까만 점이 박혀있는 것이 유포하게 안겨왔다.
이윽고 비행기가 하늘에 올라 만미터 고공에 이른 후였다.
“아저씨! 전 어제 저녁 친구들 같이 술을 많이 마셨거든요.”
“괜찮네. 술냄새도 별로 안나는구려.”
“아니 그게 아니고 졸음이 와서...죄송하지만 아저씨 어깨를 좀 빌려주면 안 될까요.”
“내 이 어깨를? 빌려 달라고? 어떻게?...”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지경으로 눈을 점점 크게 뜨며 처녀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머리를 기대고 자려구요.”
“어?...어!...그렇게 하시구려...”
내가 얼떨떨해서 머리를 끄덕이는데 내 어깨가 마치도 자기 베개인양 처녀는 스스럼없이 자기 머리를 내 어깨에 가져다 댄다...
그 처녀가 바로 지금 아들이 데리고 온 예비며느리다.
내가 입을 하 벌린채 처녀의 코등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모두들 의아한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
“아버님 혹시 저를 아세요?”
“아...아니, 그럴리가...”
나는 모른다고 두 손도 가로세로 흔들었고 머리도 설레설레 저었다.
넷이 식탁에 앉아 점심식사를 한 뒤었다. 아들 방에 들어가 한참 웃고 떠들던 젊은이들이 우리한테 할말이 있다며 기신기신 거실로 나왔다.
서둘러 늙은이와 젊은이들이 3.8선을 가로 놓고 남북담판을 하듯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마주 앉자 며느리 될 처녀가 당돌하게 입을 열었다.
“어머님, 결혼때 예단 같은 건 준비 안 해도 돼요.”
“예단을?...그래도 되는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하는 마누라와 며느리 될 처녀를 번갈아 볼라니 꼭 마치 마누라가 며느리 같고 며느리 될 처녀가 시어머니 같다.
“되고 말고요. 저의 부모님한텐 이미 말씀 드렸어요.”
“사돈집에서 별일 없다면야...”
“그리고 결혼여행은 유럽 그리스로 가려고 하는데 자금같은건 부모님께서 전혀 걱정 안해도 돼요. 우리 절로 이미 준비했어요.”
“허허허 그렇다면 한시름 덜었군.”
이번엔 내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아직 두가지를 더 말씀 드려야겠어요. 첫째 결혼 후에 우리는 여기 시집에 들어와 살겠어요.”
“그건 왜?...”
나와 마누라는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저는 밥할 줄 모르거든요. 또 그런건 앞으로도 배우려고 하지 않아요.”
“... ...”
우리 늙은 것들은 서로 마주 보며 입만 쩝쩝 다셨다.
“다른 말씀 없으시면 두분께서 동의하신걸로 하겠어요. 마지막 한가지래요. 결혼 후 잠시 우리 둘은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엉? 잠시라니 그게 언제까진가?”
내가 그냥 두눈이 화등잔처럼 커지는 마누라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한 3년내지 5년요, 그 사이 손주를 보고 싶으면 대신 영리하고 깜찍한 애완견 한마리 가져다 키우세요.”
처녀가 그렇게 지껄이는 사이 멀쩡한 아들 녀석은 그냥 좋다고 머리만 끄덕인다.
나와 마누라는 기가차서 더 말이 나가지 않는다.
문뜩, 누군가 출근은 해봤자 회사거고 월급은 타봤자 아내거고 아들은 키워봤자 며느리거라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