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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니의 수필-죽음을 준비하다
2021년02월24일 16:20   조회수:635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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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죽음을 준비하다

권연이

 

죽음을 준비하다

 

"죽음"이란 단어는 항상 무겁기만 같다. 그도 그럴듯이 "죽음"이라고 하면 눈물, 이별, 슬픔, 고통, 외로움 등과 같은 차갑고 어둡고 또한 아픈 단어들만 생각이 나니깐.

죽음도 출생처럼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가 아닌가?  

사람들은 새롭게 찾아오는 출생에 대해서는 많은 준비를 하는 같다태어나서 입을 , 지낼 , 먹을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는 그날을 위해 출생이벤트까지 준비를 하는 편이다.

이렇게 출생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를 하는 반면 죽음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죽음은 항상 갑작스럽기만 해서 우리가 제대로 준비를 못하는 였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우리는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나는 어렸을 자주 잔병으로 앓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마음을 졸이군 하였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신 건지 엄마는 "니들 두고 엄마 죽어!"라고 하셨다. 말을 태산같이 믿었고 나는엄마 아버지는 원래 죽지 않는 거구나”라고 생각을 하였다. 죽음은 나와 상관 없는 일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열 여덟 되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처음으로 죽음이란 이렇게 가까이에서 주위를 맴돌면서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는 알았다.

이른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 급하게 병원에 도착했지만 의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뒷일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이럴 수는 없다며 엄마는 의사의 옷자락을 붙들고 한번만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애원하였다. 그런 엄마를 의사는 자신들도 어쩌할 방법이 없다며 사정 없이 삶에 대한 희망을 문질러 버렸다.

아버지가 그저 주무시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눈 감고 있는 아버지를 부르기만해도 벌떡 일어날것 같은데 ... "아버지!"하고 불러 보지도 못한 아쉬움만 가슴에 안고 어른들한테 안기어 밖으로 나갔다. 한없이 울면서 매달리는  엄마를 두고 나는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소식을 전하러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전화기를 들고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아버지가 많이 아파요! 병원이에요!" 이렇게 마디만 반복하였다. 차마 죽고 있다”, “죽었다”라는 말은 입밖에 꺼내지 못하였다.

그렇게 전화를 돌리고 다시 돌아 왔을 아버지는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어른들은 누구도 나에게 어디로 갔는지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삼촌에게 아버지는 아직 젊었으니 상복을 양복으로 준비하라고 지시를 하고 누구에게는 친척 친구들에게 부고를 돌리라고 하는 지켜보던 나는 아버지가 끝내는 돌아가셨다는 알았다. 그리고 지금쯤 어디에 있겠다는 것도 있을 같았다.

어릴 학교 다니던 옆에 병원 태평실이라며 애들이 알려준 적이 있다. 대문을 사이 두고 멀리 쪽으로 쳐다보면 때론 하얀 천을 덮어 놓은 뭔가가 간혹 보이긴 했다. 애들은 그것을 시체라고 하였다. 아마 아버지는 이미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어딘가에 두고 우리 식구는 친척들에게 부추김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번이나 기절하였다가 겨우 정신이 들었고 기별 받고 집에 찾아 오는 손님들은 들어올 때마다 이게 청천벽력이냐고 엄마를 붙들고 울었다. 그러면 엄마는 기절하고 ... 그렇게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고 사람들은 아버지이야기를 나누며 어쩌면 저렇게 젊은 나이에 돌아갈 있냐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러면서 한 술이 들어가니 외가니 친가니 네가 잘 했니 내가 잘 했니 하며 기싸움을 하다가 말다툼으로 번져지기도 하였다.

엄마는 기진맥진하셨는지 더는 눈도 뜨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나는 마치 영화 보는 같았다.  문상을 사람들은 모두 영사막안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고 나홀로 영화를 보고 있는 세상사람같이 느껴졌다. 그저 어두운 태평실에 누워있을 아버지가 혹시 깨어나시면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고 그러다 돌아가셨는데...  혼자 어딘가에 두고왔다는 잔혹한 현실에 아버지가 불쌍하여   응응 울기만 하였다.

나는 문상을 와서 싸우는 사람들도, 와서 반찬타령하는 사람들도 어쩜 저럴 있는지 이해도 가지 않았고 제발 이젠 이상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했다. 마디로  그저 이런 최악의 고통이 하루 빨리 끝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아버지는 삼일제를 치르시고 아들이 어른들과 가서 화장을 하고 뼈가루는 강에 가서 뿌려 흘러보냈다. 나는 맏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바래주지도 못하였다. 초상을 치르던 그 삼일은 고통의 삼일이었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던 나날이었으며 죽음이 남겨주는 두려움에 시달렸던 후유증은 먼 훗날까지 아주 오래오래 나를 괴롭히였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날부터 우리의 목적지는 무덤이 아니었던가. 출생으로 삶을 시작하고 죽음으로 마감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의 장례식에 대하여서도.

먼저60살이 되면 그 해부터 영정 사진을 일년에 번씩 찍어 두어야겠다. 제일 행복하고 밝은 얼굴로 나를 바래주러온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니까.

장례식장에는 내가 생전 즐겨 듣던 노래를 틀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 떠나는 길에 좋아했던 노래를 들려주면 내 이승에 대한 미련을 조그미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더 중요한건 마지막 가는 길에 노래가 없으면 슬퍼질 것 같으니까.  

그리고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은 하얀 국화가 아니어도 좋다. 알록달록 백화 속에 묻어 떠나는 몸이 이 세상에서 묻어온 꽃향기를 풍기며 저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

문상을 손님들은 나보다 내가 두고가는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부탁을 하고 싶다. 세상 떠나며 미련이 있다면 바로 나의 가족과 나의 친척, 친구들이다. 그들이 내가 떠나므로 하여 깊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내가 먼저 태어난 것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을 간 것일 뿐 그 빈자리를 서로가 위로하며 채워주었으면 한다.

나는 나의 빈소를 찾은 모든 손님들이 모여 생전 나와 있었던 재미있는 일만 이야기하면서 좋은 추억으로 나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나도 세상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만 가슴에 안고 갈거니까.

마지막으로 나의 골회는 어느 조용한 숲속 나무밑에 뿌려주었으면 한다. 내 몸은 죽어 재가 되었지만 내 영혼은 그 나무에 기대어 자연과 하나가 되고 또 언제인가 누군가가 내가 그리워지면 찾아올 곳이 있지 않을까?  

나는 나에게 죽음 두렵지 않다고 매일 말해줄 것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최고로 산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인간으로서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내 것 아닌 것에 욕심 내지 않고 만족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았던가.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또한 세상에서새로운 출생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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