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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금과 수필-초불
2021년02월08일 17:32   조회수:177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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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초불

정순금

 

초불

 

먹물을 칠한 듯 캄캄한 밤에 나는 어디론가 자꾸 허둥지둥 달려가다 주춤 멈춰선다. 사면이 캄캄하여 한치 눈앞도 보이지 않고 매서운 강추위가 온몸을 기습하여 사지가 얼어붙는 듯 하다.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친다.

(이러다 여기서 얼어죽고 말겠네.)

“엄마”

나는 목놓아 불렀다. 갑자기 사면이 훤해졌다. 소복단장한 엄마가 초불을 들고 나에게로 향하고 있지 않는가! 급기야 나는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헌데 이게 웬 일이냐! 금방까지도 눈앞에 보이던 엄마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엄마~”

“따르릉…따르릉”

요란한 전화벨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이 새벽에 누가 전화를?)

벽시계를 보니 새벽 3시도 안되였다.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침실을 뛰쳐나가 거실 책상우에 놓인 수화기를 들었다. 친정 올케가 슬피 울고 있었다. 허둥지둥 나는 잠옷바람으로 집문을 뛰쳐나갔다. 1리 남짓이 떨어진 엄마집을 향해 무작정 뛰여갔다. 뛰여가다 엎어지며 간신히 엄마 사는 동네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빠트 3층집을 향해 단숨에 뛰여올라가 문을 떼고 들어섰다. 객실 침상에 고히 잠든 엄마가 한눈에 안겨왔다.

“엄마! 엄마!”

나는 엄마 시체를 붙안고 목놓아 슬피 울었다. 100세 로인이라 이제 돌아가셔도 호상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쩐지 우리 엄마가 불쌍하여 목놓아 울고 또 울었다.  

소식을 접한 형제와 친척들이 선후로 련속 들이닥쳤다. 막내 녀동생 영자는 엄마시체를 붙안고 슬피 울다가 졸도까지 했다. 왜 안그러랴?

어머니는 청춘에 39세밖에 안된 남편을 잃고 슬하에 6남매를 홀로 키웠다. 초불 같은 우리 엄마 신세, 나는 어머니 제사상에 양초를 올려놓고 심지에 불을 붙였다. 창문틈으로 불어오는 미풍에 초불은 가냘프게 하느작거리며 조용히 자기몸을 태우고 있었다.

눈앞이 몽롱해진다. 하느작거리는 초불도 몽롱하게 안겨온다. 일곱살 때의 일이 추억에 딸려나온다,

설이 지난지 보름도 안되여 목재판에 다녀오셨던 아버지가 파상풍에 걸려 사흘만에 돌아가셨다. 청천벽력이였다. 우리집은 물론 온 마을이 비통에 잠겼다. 만삭이 된 어머니는 슬하에 5남매가 있었다. 삼일장이 끝난 후 동네사람들은 어머니를 찾아와 큰딸을 그만 공부시키고 밑에 동생들이나 돌보게 하라고 재삼 당부했다고 한다. 그때 우리 큰 언니는 마을에서 유일한 녀대학생이였다. 엄마는 빌어 먹더라도 애들 공부는 시켜야 한다고 상복도 벗지 않은 채로 밭으로 나갔다.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라고 우리 형제 자매들도 일찍 철이 들어 열심히 어머니를 도와 드렸다.

내가 11살 먹던 해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집체때인데 하루는 어머니가 중환에 걸려 누워계셨다. 이때 쌀 타러 오라는 통지가 왔다. 이웃집 어금이 엄마가 함께 쌀 타러 가자고 우리집에 들어섰을 때는 저녁 9시가 넘었었고 밖에서는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언니 오빠들이 현성학교에서 주숙하고 있을 때라 집에는 제일 크다는게 나였다. 겁이 많은 나는 자는 녀동생을 깨워 앞세우고 쌀 타러 나섰다. 생산대에서 내주는 쌀은 20근밖에 안되였지만 어린 나에게는 버금찬 일이였다. 쌀을 조그만 머리우에 이고 휘청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도중 몇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른다. 그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가 없는 자신이 불쌍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앞서가던 동생이 다리 아프다고 떼질쓰는 통에 집과 가까운 울타리 입구에 이르러 나는 쌀을 내려놓고 땅에 주저 앉았다. 나는 녀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좀 쉬여가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어머니가 초불을 들고 마중나오셨던 것이다. 초불에 비춰진 어머니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얼굴은 눈물투성이였다. 왜 안그랬으랴. 어른들도 나다니기 힘든 야밤에 철부지애들을 내보냈으니 엄마의 마음인들 오직 아팠으랴. 그때 우리 셋은 서로 붙안고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모른다. 피 흐르는 모지름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어온 우리 어머니의 피어린 자욱, 자욱 어찌 한 입으로 다 말 할 수 있으랴.

자식들 푸른 꿈 키워주고 주렁진 열매 안겨준 위대한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끝끝내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다. 자식 6남매를 모두 중학교를 졸업시켰고 그중 셋은 대학교 공부까지 시켜 나라의 공무원으로 키워냈으며 사회에 나가서도 저마다 두각을 나타내도록 했다. 어머니의 빛과 열이 없었더라면 어찌 자랑찬 우리들의 오늘이 있을 수 있으랴.

아, 위대한 우리 어머니

이승에서 한평생 고생만 하시고 자식 걱정만 해오셨던 어머니, 이제는 무거운 짐 훨훨 벗어버리고 색다른 저승에 가셔서 아버지 만나 안락한 생활 누리세요.

(어머니 고히고히 잠드세요)

영정 앞 초불은 눈물 떨구며 일초의 쉼없이 자기몸을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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