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무덤(외1수)
권연이
가을무덤
가을 저쪽에
내 무덤이 곱게 파여 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네
새잎 파랗게 피우기로 한 그 때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네
그럼에도 나는
봄에서 기꺼이 피워 올렸네
한이 없도록 피워 올렸네
여름을 파랗게 질식시키기도 했네
아침 새 소리에 마음껏 기지개를 폈고
따가운 정오에는 때론
달콤한 동면을 꿈꾸기도 했다네
저녁 노을 지을 즈음
서쪽 하늘 바라보며
나만의 찬송가도 높이 불러 보았고
긴 밤은 누군가를 그리느라 외로울 새 없었다네
그렇게 한 순간도
나는 삶을 우롱한 적이 없었다네
태어난 그 날
죽음을 안고 태어났으니
빨강과 노랑과 눈부심으로 온 몸을 불태워
나는 가을로 가려네
저 노을에 뛰어들어
함께 물들어 가려네
성큼성큼 룰루랄라
내 무덤이 곱게 파여 있는
가을로 가려네
간 큰 달팽이
혼이 쏘옥 빠진채로
길 한 가운데 쓰러진 달팽이
참 간도 컸다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시도 때도 안 보고
껍질 단단하다고 의기양양 폼 잡고 나섰다가
가을의 유혹에 빠져
영혼까지 다 내 줬는데
어쩌나
이걸 어쩌나
끝내는
말라터진 빈껍데기만 남겨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