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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  좋은 글  >  향기의 정원-왕관의 무게
향기의 정원-왕관의 무게
2021년01월20일 18:33   조회수:513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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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왕관의 무게

이홍숙

 

왕관의 무게

 

어느덧 포근하고 따뜻한 봄이 지나고 무더위의 계절 여름과 함께 한 학기의 마무리 기말시즌에 들어섰다. 기말은 한 학기내에 아이들의 학습태도와 성과를 점검하는 시기라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부모들은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편이다. 특히 큰 아이는 초중 3학년으로 막내는 초중 1학년으로 진학하는 시기라 학부모인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신경이 씌이는 시점이였다.

얼마전 기말을 치고 난 뒤 막내아들이 신이 나서 집에 뛰여 들어왔다. 여느때와 달리 활짝 피여 있는 얼굴이라 당연히1등을 한 줄 알고 기대를 했었는데 아이의 대답은 아주 예상밖이였다.

이번엔 다행이 2등을 했어요.”

아이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안도감 비슷한 감정들이 서려있었다.

아니 왜? 1등이 아니라 2등인데 그렇게 좋아하는 거니?”

꼭 1등 해야 되는건가요? 그냥 2등이 편해서요.”

자존심이 세서 혹여 패배감에 사로잡힐 가봐 걱정을 했었는데 의외로 막내는 아주 생기발랄한 얼굴이였다. 평소에도 우리 나라의 현재 주입식 교육의 페단뿐만아니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아는 우리 한가족이였기에 단 한번도 아이들에게 우등생이 되라고 주문을 한 적이 없었다.

특히 천방지축 망아지처럼 날뛰는 스타일의 막내에게는 오히려 모든 일에 차분하게 임하는 좋은 학습 습관과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키우라고 강조하는 편이였다. 큰 아이는 태여날 때 부터 성품이 유순했고 총기가 뛰어난 건 아니였지만 무슨 일에든 끈기가 있는 반면에 둘째는 배속에서 미리 약육강식의 랭정한 세상법칙을 미리 터득한 것인지 기억력이 뛰어났고 무슨 방면이든 꼭 형을 초월할려는 욕심이 있어 별 힘을 쓰지 않고도 학습성적이 늘 1등을 독차지했다. 승부욕이 강하던 둘째 아이의 갑작스러운 태도변화는 마음속에 의문의 씨앗을 뿌려놓은 격이였다. 1등석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망하는 자리가 아니던가?

저녁을 먹고 난 뒤, 출장을 다녀온 남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했더니 남편이 아들과 소통을 해보겠다며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아이의 아빠가 일때문에 남방쪽에 뿌리를 내리고 회사를 운영한 리유로 애들은 한달에 한번씩만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아이들이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고 키가 쭈욱 우리를 넘어선 뒤에야 어린시절 함께 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인지 남편은 남방에 가끔씩 출장을 가는 걸로 스케줄을 맞추고 우리가 사는 도시에 자리를 잡게 되여 요즘은 애들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되여 주고 있었다.

아이와 단독대화가 필요하다며 어깨를 곁고 나간지 얼마 안되여 남편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막내가 글쎄 아주 진지하게 고민을 상담하더라는 것이였다. 1등을 하게 되면 아이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여 1등다운 면모를 갖춰야 한다는게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이였다. 타고난 성격을 보더라도 큰 아이는 너그럽고 조용한 반면에 둘째아이는 성격이 활달하고 장난이 심했다. 그리고 자기주장이 심해서 공격적인 성향을 지녔고 막내로 태여나서인지 자기중심적이기도 했다. 자녀의 성향은 부모가 잘 안다고 우리 부부는 수도없이 아이들에게 부족한 면을 보탤수 있는 조언을 하고 있지만 타고 난 성향은 쉽게 바꿀 수가 없는 부분이였다. 그래서 아이도 아마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였다.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도 아직 여운이 남아있는 지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는 쉼없이 내게 속내를 토로했다.

“1등이 왜 저래? 우수 소선대원은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이런말을 듣는게 너무 부담스러워요. 차라리 2등을 하겠어요. 그럼 친구들의 말밥에 오르지 않아도 되니까.”

사춘기 앓이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됐나보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답게 막내는 예민했고 주위에서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무척 신경을 쓰고 있었다.

우리가 자라날 때는 순수해서인지 아니면 별 생각이 없어서인지 사춘기가 사춘기인지도 모르고 그 시간을 지내왔다. 근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사춘기인지는 모르지만 내게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했던 그런 시간이 있었던 거 같다. 같은 또래의 녀자아이들은 새옷을 입고 나오면 꼭 자랑을 해도 나는 새옷을 처음 입는 그날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것만 같이 내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져 집에서 하루이틀 입고 난 뒤 익숙해질 때 즈음에야 학교에 입고 나가군 했었다. 1등을 하는것보다 2등이나 3등자리가 뛰여 넘을 목표가 있어서 더 좋다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지… 1등자리는 아래로 이끌어져 내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왜 그렇게 비관적이였는지 모르지만 그때 그 시절엔 그런 생각들이 내 뇌리를 꽉 메우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이가 내 자신이 걸었던 길을 고스란히 걷고 있는 걸 확인하면서 유전자의 힘이 무섭다는 걸 새삼 느껴본다.

그날, 저녁운동을 다녀온 아이에게 음식을 차려주고 식탁에 마주앉아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들, 1등을 했을 때엔 친구들이 네가 부러워서 그랬을 수도 있어. 생각해봐, 혹시 아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였으면 하는 기대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가 하고 말이야.”

아이는 밥술을 뜨려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침묵을 지켰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겠지. 무게를 견디는 방법이 하나 있어.”

방법을 제시한다는 내 말에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주위 친구들에게 네가 아는 지식들을 가르쳐주는거야. 네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네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속이 상한 부분을 너그럽게 품어주는거지. 그리고1등 답게 실력을 더 쌓고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거. 그러면 친구들이 다 좋아하지 않을까…”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내에서 간단하게 조언을 했다. 아이도 아이들만의 세계에서 어떻게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하는건지 또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드는 건지 많은 고민을 하고 그걸 풀어가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친구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고 또 1등이라는 그 자리를 지키려면 또 주위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그 방법을 나름 물색하고 있을 것이다.

내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되서인지 막내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이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앗싸,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여라. 17세기 영국의 대문호 쉐익스피어가 남긴 말이다. 이는 왕관을 쓴 왕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왕관을 쓰려면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얼마나 많은 뜻이 내포되여 있는 말이였던가?

왕관은 막강한 힘과 엄청난 특권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상에 대부분 사람들은 화려하고 멋진 왕관을 쓰기 위해 노력을 한다. 심지어 평생을 그 왕관 하나를 위해 바치기도 한다. 간혹 가다 왕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꿈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분야든 열심히 하다보면 의도치 않게 왕관을 쓸 수도 있다. 왕관을 쓴 자 들이 견뎌야 할 무게는 자신만이 알게 되기에 주위 사람들은 또 그걸 행복한 고민이라고 칭하기도 하는 법이다. 왕관을 쓰고 왕이 되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왕관에는 그에 따른 부담감 책임감 고통 연단이 필시 무게가 실릴 것이다.

얼마전 실제로 여러방면의 우월한 실력을 갖춘 문우의 “외딴방”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글 역시도 왕관을 쓴 자들이 그 무게때문에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서의 고충과 주위사람들과 멀어져서 생기는 마음속 고민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던 내용이였다. 모든 왕관을 쓴 자들만 아는 고충이고 고민이다. 왕관의 무게는 아이들뿐 만아니라 어른들까지도 버거워하는 부분임이 분명해보인다.

며칠전, 가족 구성원 그 누구도 터치하지 않은 상황하에서 두 아들은 나름 야무지게 류학계획을 세운 뒤 온 가족앞에서 설명회를 해 또 한번 우리 부부를 놀라게 했다. 아이들의 치밀한 계획대로라면 현재 몸 담그고 있는 학교 뿐만아니라 전 구역내에서도 성적이 상선을 그어야만 가능한 일이였다.

세월이 흘러 둘은 이제 품에서 놀 때처럼 나를 의지하고 내게 순종적인 어린애가 아니라 어느덧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을 했다는 사실이 왠지 시원섭섭한 느낌이다. 혼자서도 잘할거라고 믿고 만약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게 아이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아이가 원하는 화려한 꿈과 목표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 꿈이 멋지고 대단해보일 것이지만 그 뒤면에는 얼마나 뼈아픈 고통들이 동반되고 희생과 인내를 해야만이 이루어지고 차려지는 것이던가?

부모의 립장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내 아이가 왕관을 쓰든 쓰지 않든 아무 상관이 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진정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만 준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왕관-그 무게가 얼마나 엄청나다는 걸 잘 알기에 왕관을 써서 행복하지 않다면 굳이 꼭 왕관을 쓰기 위해 노력하라고 권면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꿈을 좇는 과정에서 왕관이 차려진다면 또 의도치 않게 쓰게 된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주위를 돌볼 줄 알고 또 왕관에 걸맞게 자신의 능력을 부단히 업그레이드하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다. 왕관을 쓴 내 아이가 행복하다면 말이다.

햇살 한웅큼이 집안 가득 쏟아져내려 눈이 부신 오후이다. 커피 한잔을 안주삼아 아이들의 사춘기 성장일기책을 펼치고 메모를 해두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필시 기록을 해 둘 것이다.

그래도 굳이 써야 하겠다면 왕관을 제대로 쓰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야 할 너희들의 건투를 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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