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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미의 수필세계-엄숙하게 수다떨기
2020년12월30일 16:34   조회수:139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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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숙하게 수다떨기

전향미

 


엄숙하게 수다떨기

 

 

고장난 전등아래 어둠이 앉아있고 어둠속에는 내가 앉아서 키보드를 두들기고있다. 컴퓨터 모니터가 창백한 빛을 내뿜으며 나를 쳐다본다. 한밤중에 만사 제쳐놓고 친구와 엄숙한 수다를 떨고있는중이다.

“하나밖에 없는 칭구야, 즐겁게 뭐하고있노?”

매일마다 달려오던 유쾌한 안부인사가 아니다. 밑도 끝도 없는 쌍욕 두글자가 위챗 대화창에 불쑥 날아든다. 그도 컴퓨터 키보드를 리용하는 모양으로 걸쭉한 욕 인사 던져놓고는 분노를 등에 업은 꼬부랑 글을 거침없이 이어댄다.

“분하고 분해서 분통이 터져!”

“젊었을때는 집구석에 틀어박혀 새끼낳고 새끼거두고 살림하면서 걸레짝 차림으로 사회무능인간으로 비신대며 살아왔지.”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이 문자 사이사이에 얼른거린다.

“별들이 조으는 밤에 아까운 자신을 깍아내리는 원인이 뭘가? 나그네랑 또 한판 붙었구나.”

물으나마나 또 남편과의 갈등이다. 말 한마디 어리버리하게 한 죄로 남편 회사의 일 잘한다는 녀직원과 알뜰히도 비교당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숟가락을 밥상에다 북치듯 쳐대며 눈 부릅뜨고 훈계를 하더라니 무시를 당해도 그보다 더 처참한것 어딨냐는 말이다.

밸이 꼬이고 창자가 터지기전에 속풀이를 해야만 숨을 쉴수 있다는 상담 주문이다. 그리 머지 않았던 과거에 시도 때도 없이 나의 화풀이 상대가 되여주었던 그녀가 아니던가. 이런날 이런때에는 나도 착실하게 앉아 친절한 상담원이 되기로 한다.

소꿉친구다. 분 보얗게 바르고 3백여명 사원들앞에 서서 왈라왈라 통역을 하던 적당하게 예쁜녀자, 사십이 다 되여 낳은 둘째까지도 순산을 하여 구차한 살림에 비용을 절감한 녀자, 중학교 체육시간에 웃몸 일으키기 시험이 있을때마다 사십몇개나 하고도 더할려고 몸을 비틀어대며 배힘 약한 나를 애태우던 녀자,

그녀가 오늘은 악이 치받혀 적라라하게 욕을 해댄다. 수줍게 앉아서 빨간 두루말이 휴지를 차곡차곡 접어 생리대를 준비하던 이팔청춘 소녀가 중년의 아줌마로 되여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입에 담기를 서슴치 않는다.

세월이여. 네월이여. 흘러가버린 시간속에 꽈리를 틀어버린 허탈함과 우울함이여.

어둠이 죽치고 들어앉은 방에 공기가 몸살을 앓는 모양으로 케케묵은 냄새를 발동시켜 목덜미를 조여온다. 비실대며 일어나 열어놓은 창문으로 우유빛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어둠을 비집고 눕는다.

내가 있는 청도의 밤은 그럭저럭 아름다운데 그녀와 함께 하는 대화창에는 괴로운 악담만 구비치고있다.

“지는 밖에서 돈벌고 나는 집구석에서 맴돌면서 지 키우고 날 죽이고 했는데 이 나이 되도록 결국 집도 못하고 저금 한푼 못하고 나는 빙신 됬잖아. 새끼 낳고 사회에 나가 날개를 굳혔어야 하는데 애써 거두어놓은 인간들한테 무시당하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냐 말이다.”

전업주부의 비애를 절절히 통감하는건가. 가정살림이 여의치 않는 그 잘못이 맞벌이 하지 못한 자신에게 있다고 스스로 자책하는 녀자, 남편이 먹여주는대로 식충이로 살며 애들 열심히 키웠는데 리해를 해줘야 할 남편이란 남자가 병신짝 취급하듯 무시를 하니 기분 더럽기 짝이 없고 살아가야 할 리유가 아무리 머리 쥐어짜며 생각해도 하나도 없다는 넋두리다. 아무곳이나 도망치고 꺼지고 싶은게 진심이란다.

이쯤에서 키보드 후려치는 내 손가락에 불이 달린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얼굴이 영채처럼 누렇게 뜨기전에 녀자로서의 발악쯤은 해야 한다고. 갱년기 오면 너나 나나 영낙없는 할망구 인생이라. 흰머리는 눈발처럼 흩날리고 가죽은 가물 든 터밭처럼 갈라터질거야.

이젠 애들도 제법 컸으니 집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사회의 품에 뛰여들 차례 아니겠나. 녀자의 분장을 하고 녀자의 웃음을 웃으며 녀자로서의 사랑도 받으며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요? 하나밖에 없는 칭구님.

흐흐흐. 그녀가 가늘게 웃는다. 표정없는 얼굴로 우리를 까무러치게 웃기는 재주를 가진 그녀가 언제부터 얼굴이 굳었는지는 모르겠다. 제가끔 시집을 간후 중국의 동과 서에 떨어져 살았으니깐.

그런 그녀가 흐흐흐 가늘게 웃었다. 잘 훈련된 나의 상담능력이 빛을 보는 순간인가.

분풀이로 저녁을 장식하던 그녀의 소리가 한결 나긋해진다.

나 말이야. 자다가 사랑받는 꿈을 잘 꾼다. 사랑받는 그 느낌 진짜 좋더라. 진짜야. 정말이라고.

흐하하. 이젠 내가 웃어줄 차례다. 꿈안에서나 꿈밖에서나 사랑받고 사세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당당함으로 스스로에게 사랑받고 남편에게 사랑받고 사회의 사랑을 받기를. 그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기를 내 여기 청도 고장난 전등아래 앉아 열심히 축원해드리오리다.

밤늦도록 두 녀자의 수다아닌 수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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