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변경]
업체입주
위챗으로 스캔하기
업체입주
등록
위챗으로 스캔하기
등록하기
포스트  >  좋은 글  >  박영희와 수필-가냘픈 들꽃 한송이
박영희와 수필-가냘픈 들꽃 한송이
2020년12월22일 17:39   조회수:908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ZOA Post Icon-02.pngZOA Post Icon-03.pngZOA Post Icon-04.pngZOA Post Icon-06.pngZOA Post Icon-05.png

   

수필

가냘픈 들꽃 한송이

박영희

 

           가냘픈 들꽃 한송이


늦은 봄, 우리집앞마당 한모퉁의 메마른 돌틈새에 이름모를 자그마한 들꽃한송이가 피였다. 현대식의 깨끗하고 화려한 주택가 돌틈에  이름모를 들꽃한송이 활짝피였다는 것도 신기하였지만 늦은봄,그것도 가냘픈 한송이인것이 너무나 측은해 보이고 또 대견스러워보였다.다른 들꽃들은 이때면 이미 다 사그러졌지만 이작은 노란꽃은 계절을 아랑곳하지않고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있다. 가냘픈 잎사귀와 가지에 비해 그 노란 꽃송이는 제법 소담하고 탐스러워 보였다. 꽃송이는 체대에 비해 너무나 크다. 너무나 힘에 부쳐보이지만 꾿꾿이 힘들게 꽃판을 받쳐들고있다.아마 사명을 다할때까지 자기의 전부의 에너지를 태울것이다.

     그옆에는 화단이있다.우리집은 일층에 자리잡은 덕분에 자그마한 정원을  화단으로 사용할수있다.화단에는 내가 좋아하는 탐스러운 꽃들이 사계절 앞다투어 핀다. 탐스러운 피오니, 목란꽃 그리고 일년에 몇번이고 피고지는 월계화꽃,  화단밖 인행도 옆과 그 주변에는 봄부터 시작하여 살구꽃 복숭아꽃 그리고 모란화 자미화…. 그런데 나는 오늘 이 이름모를 들꽃앞에서 발걸음을 돌릴 수 없다. 나이를 먹어서인가.지난날 무수히 보아왔고 또 무심히 지나쳤을 한송이 들꽃 앞에서 오늘은 어쩐지 가슴이 짠하다. 보고 보아도 어쩐지 그 갸날프면서도 생명력이 강한 모습이 누군가를 닮은 것 같다. 너무나 먼 옛일이다. 나는 어렴풋한 머나먼 옛적 기억속을 더듬어본다. 아,그분이다 나의 외할머니….

     나의 외할머니는 젊어서부터 미인이였는데 또 얌전하고 아릿다운 자태가 뛰여나기를 그 린근마을에서는 소문이 나있었다고한다.하여 옛날그때, 그마을에서 가장 땅이 많고 또 12칸짜리 고래등같은 기와집에 살고있는 부자집 외동아들에게 시집을 온 것이였다. 외할머니의 시아버지는 한국땅에서 이산골에 올때는 빈주먹의 28세의 외톨이였다고한다. 빈두주먹으로 열심히일해 부자가된 시아버지는 외독자인 아들사랑이극진하였는데 부자가 다음대가 생각대로되기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시절도 잠시였다. 독자인 외할아버지대에 와서는 몰락하기 시작하였는데  토지개혁때에 와서는 기본상 몰락할때로 몰락해 상중농으로 평을 받고 살고있는 집은 다른사람과 두집에서 나누어쓰게되였는데 사실 재산이라고는 아무것도없는 빈털털이었다. 거기에다 외할아버지는 젋어서는 풍류에 젖어있었고 후에는 병으로 앓다가 외할머니보다 거의 30년먼저 저세상으로 떠나가셨다. 일찍부터 온집의 여자란 외할머니와 맏이이며 외동딸인 나의 어머니뿐인데 어머니마저 어린나이에 일찍 공부하러 집을 나갔다가 후에는 군대에 입대하였기에 오래동안  남자들만 있는집에서 쓸쓸한 고독과 함께 넘쳐나게 무거운 생활의 짐을 짊어져야만 했다.그러나 그 가혹한 현실앞에서도 성질이 온화하고 인내심과 너그러운 심성을 가진 외할머니는 남이 싫어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실줄 모르셨고 평시 생활속에서도 집에서 자식들에게도  큰소리한번 치신적없고 이발을 드러내며 큰소리내여 웃어본 적없으셨다. 항상 팽이처럼 맴돌며  말없이 힘에부치게 일만 하시는 부지런한 분이시였다. 또 농촌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는 믿기  어려울만큼 어울리지않게 허리가 가늘었고 갸날퍼보였다.그때는 여자들이 집부엌에서 쓰는 물을 먼아래동네 우물가에서 물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어날랐는데 외할머니가 몇십년을 하루와같이 매일 적어서 10여차를 그 언덕을 오고가야하였다.  새색시적 치마저고리를 입고 허리에 끈을 두르고 찰랑이는 물동이를 이고 한들한들 물을 나르는 모습이 진짜 하늘의 선녀가 보면 울고 돌아갈 지경으로 아릿다웠다고 한다.아마 그때를 내가 보았다면 예쁜 나리꽃같았다고 할지도 모르나 세상을 알기시작하여서 나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외할머니의 모습은  바람이 불면 날려갈듯말듯 갸날프면서도 또 끝까지 버티고서서 메말라가는 몸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바쳐주는 강인한 들꽃같은 외할머니였다.

어린시절 방학이되여 농촌에 계시는 외할머니댁으로 놀려갈때면 나는 전날부터 흥분하여 잠을 설치군하였다. 뻐스를타고 산길을 걸어 마을에 도착하면 저멀리서도 볼수있는 산기슭에 높직히 자리잡은 둥실한 기와집과 넓직하고 높은 앞마루, 마음대로 먹을 수있는 여러가지 군음식먹거리,그리고 함께 들놀이를 할 수있는 친구들 ….이 모든것이 작은현성에 사는 나로서는 상상만해도 기쁨으로 둥둥뜨게 만들었다. 외할머니는 농망기가되면 밭일외에 집식구들의 세끼밥을 도맡아해야했기에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방학때는 내가갔다고 어딘가에 보관해 두었던 작은오지단지에서 여러가지 종류의 과일, 배 사과배 그리고 해바리기씨 호박씨 같은 것을 꺼내주었는데 그신기한곳은 외할머니외에 다른사람들이 마음대로 얼씬거리지도 못하는 비밀의 장소, 마술단지들을 숨겨놓는 곡간이였다.그리고 뜨거운 뙈약볓에 머나먼 모래밭 터밭에서 참외를 따오고 ,땅꽈리를 따오고 또 저녁한끼를 위해 작은 고개넘어 자류지밭에서 풋옥수수따서 그 큰다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땀벌창이 되여서 가는 허리를 휘청거리며 돌아오군하였다. 그때는 하루삼끼를 끓이는데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했는데 마른 옥수수단을 썼다.할머니 키보다 더크고 무게도 배는 될 옥수수단을 끌여들여 불을 지피고 부엌을 오르내리면서 찰시루떡을 해주던 일,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흐믓이 바라보던 모습이 어제일같이 잊쳐지지않는다…이렇게 외할머니는 하나의 불평 원망 그리고 조금의 게으름도 없이 갸날픈 몸으로 일생을 하루와 같이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억척스레 자기몸을 바쳐 일하셨다.주어진 험악한 조건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아주 평범하면서도 충실하고 드팀없이 열심히 사시었다.마치 생명력이 강한 눈에 뜨이지 않는 작은 들꽃처럼……

중년, 로년기에 들어선후에도 외할머니는 그 험악한 환경에 부대끼면서도 미모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천성적으로 새하얀 얼굴은 뙈약볓에 그을려 항상 사과처럼 홍조가 어려있었고 일할때 헝겁끈으로 허리를 동이면 옆사람들은 개미허리 같다고 놀려대군 하였는데 오죽하면 내가 고중을 다닐때 다들 나의 허벅다리가 외할머니의 허리둘레와 같다고들 웃엇겠는가. 그런데 외할머니가 로년기에 들어서서야 알게된 일이지만 특별히 나를 놀라게 하는 하나의 흥취가 있었으니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였다.외할머니는 60세가 넘어서부터는 겨울농한기마다 우리집에 오셨다가 봄이되여 농망기면 농촌에 계시는 외삼촌댁으로 가시군하셨는데 우리집에 오시면 항상 깨끗하고 새하얀 옷차림에 돋보기를 눈에 걸고서는<연변문예>,<연변녀성> 그리고 <장백산> <은하수><도라지>와 같은 책단아에 싸여있는 문예잡지들을 즐겨보셨는데 몇번이고 돌려가면서 보셨다. 그이상 더는 별로 볼것이 없을때는 초중 고중의 조선어문교과서와 연변일보등 집에있는 읽을수있는것이면 모두 즐겨보셨다.그때는  텔레비가 없었으나 그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책은 보고 또보아 책갈피에 보풀이일었다. 외할머니는 책을 볼때는 누워보는 습관이없이 꼭앉으시어 읽군했다.외할머니의 책을 보고있는 고운자태 그 외소한 모습을 보고 우리집으로 오신 손님들과 이웃들은 경탄을 아끼지않으셨다. 《어쩜 저렇게 곱게 년세가 드셨을가 》<로인네가 어쩜 저리 이쁠가>아직도 새색시처럼 얼굴색이 하얗고 양볼이 사과처럼 불그레 하네,이런 할머니 처음보네 >그러면 외할머니는 말없이 입을 오므리고  미소로 화답하군하셨다.그리고 그 험악한 자연환경에서 허약한 몸으로 버티면서 몇번이고 크고작은 병으로 생사선을 넘나들면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하였지만 그럴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닝겔주사 몇병 맞고서는 완쾌되 몸을 털고 일어나셧다.그리고는 또다시 집으로 돌아가셔 농망기마다 다시 이악스레 농사일을 돕군하셨다.때로는 그강한 의력과 생명력에 우리들도 놀라군하였다.어디에서 그처럼 강한 에너지가 산생하는지. 이렇게 자신을 불태우다 86세를 일기로 생전에 그러하듯이 깨끗하게 세상을 마감하셨다. 

어떤 사람들의 인생은 목란이거나 월계화와 같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사람마다 우러러보며 찬송하고,어떤사람들의 인생은 창창한 숲을 이루면서 하늘을 치솟은 큰나무와 같이 위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주는 업적을 쌓았지만 어떤 사람들의 인생은 들꽃처럼 화려하지도 위대하지도 않기에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강한 생명력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열심히 완벽하게 해내고있다. 할수 있는 일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다른사람의 것을 탐하지않으며 열심이 살아가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인생,나는그것이 존경스럽고 너무 멋지다.

 

외할머니의 강인하고 끈질긴 정신력은 그후 나에게 적잖은 계발과 도음을 주었다.대학을 가는것만이 유일한 출로인줄알았던 나는 고중을 졸업하고 농촌에 하향지식청년으로 5년간 있었다.민반교원을 할 수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낮에는 사원들과 함께 힘든 체력로동을 하고 저녁이면 거의 매일이다싶이 밤늦께까지 각종 회의에 참가하면서도  짬짬히 책을보고 총결재료를 쓰고 보도를 쓰면서 문학소녀의 꿈을 꾸었다.작은 현성의 지식인가정에서 태여나 아홉살까지 무남독녀로 자란 내가 농촌에 가서 하루도 무고결근이 없이 5년을 버텼다는 것은 외할머니의 강인한 정신력이 바탕이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일본에서의 6년,박사공부하는 남편과 초중에 다니는 아들의 뒤바라지를 하면서  일어공부에 게으르지 않았고 늦둥이를 임신하고 해산 한달전까지 일하러 다녔다.그리고 개복수술로 병원에서 10일보내곤 출원한후 20일만에 또다시 하루 네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40이 넘어 늦둥이를 낳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낯선 이국땅에서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고 가볍게 녀성의 제일 힘든 고비를 넘겼다는 것은 또 외할머니의 강인한 모습이 바탕이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외할머니, 하늘나라에선 여유롭게 보내시는지요.부디 행복하세요.

 

    2018.1  朴英姬

박영희.jpg

            



포스트 아이디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소개
청도작가협회
추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