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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  좋은 글  >  정순금의 수필-마지막 미소
정순금의 수필-마지막 미소
2020년12월02일 17:55   조회수:192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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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마지막 미소

정순금

 


마지막 미소

 

요즘 들어 나는 가끔 상념에 잠긴다. 그 무슨 즐겁고 기쁜 환희로 들떠 잠겨보는 상념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을 서늘케하는 죽음에 대한 상념이다.

나란 사람은 "죽음"이란 두 글자만 보아도 기분이 흐려지고 시체를 보면 전신이 굳어져 버린다. 몇해 전 동료의 장례식에 갔다가 관 속에 누운 시신을 보고 기절한 적도 있다.

죽음은 그만큼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였고 나와 너무나 거리가 먼 일이였다.

그러던 달포 전 장기환자로 병환에 시달리던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13살에 아버지를 잃고 올망졸망한 어린 동생들을 다 클 때까지 뒤바라지를 하며 한평생 고생하신 언니가 세상을 떠나자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복 받고 살아갈만 하니 영영 떠나간 언니 앞에서 우리형제들은 실성통곡했다. 녀동생이 울다가 졸도했고 조카애들이 쓰러져나갔다.

언니가 세상 떴다는 소식을 듣고 밤중 비행기로 달려온 나는 눈을 감고 누워있는 언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체에 대한 공포심 같은 건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나는 언니의 싸늘한 손을 꼭 잡았다. 말없이 누워있는 언니의 모습은 결코 한구의 시체가 아니였다. 수많은 세월을 품은 력사였고 교과서였고 추억이였다.

언제나 웃으며 반겨주고 웃으며 바래주던 언니, 갸냘픈 몸으로 집안의 대들보를 떠메고 한평생 수면 부족으로 눈굽을 찍던 언니가 혼곤히 잠든 듯한 모습으로 조용히 누워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영화처럼 우리들에게 재생시켜 주고 있었다.

자기를 찾아 달려온 형제들을 보고 기쁘다는 듯이 언니의 눈귀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러나 불러도 대답 없고 흔들어도 대답 없었다. 분명 영영 떠난 사람 앞에서 울음도 소용 없었다. 우리는 그런 언니를 잘해주고 싶었고 언니의 평생 여한을 깡그리 풀어주고 싶었다.

“잘해주기오. 언니의 마지막 길을…”

누구라 할 것 없이 형제들 입에서 거의 이구동성으로 흘러나왔다.

분장사를 청해 새옷으로 갈아입혔고 장기 환자로 고생하며 깊게 패인 언니의 주름살을 메워가며 화장을 시켰다. 꼭마치 출장 나가는 언니를 화장해주 듯 화장사는 언니의 얼굴을 가볍게 보듬은 후 재치있는 솜씨로 스킨, 로션, 분, 연지, 립스틱을 순서있게 골고루 정성들여 발라주었다. 

돈이 아까워 한평생 스킨이 무엇이고 로션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눅거리 크림 하나로 세상을 살았던 언니는 마치 즐기는 듯 두눈을 꼭 감고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물고 있었다. 평생 향수하지 못했던 “행복”을 누려서일가? 언니의 얼굴은 금시라도 깨여날 듯이 밝아졌고 언니의 미소는 금시 꽃이라도 피여올릴 듯 싱싱했다.

화장사를 거들어주던 나는 언니의 팔베개를 베고 눕고 싶은 충동까지 생겨났다. 옛날처럼 언니의 갸냘픈 몸에 매달려 어리광부리고 싶었다.

떠나면서도 잃지 않았던 미소, 언니의 미소 속에서 우리는 생과 사의 경계선을 모두 망각하고 아름답게 탄생한 언니의 모습에 환성을 질렀다.

돈 일전이라도 아낀다고 제손으로 좋은 옷 한벌 못 사입고 예쁜 화장 한번 못해본 언니가 죽어서 멋진 옷에 고급화장 받고 떠나니 내 가슴 속에 들어앉은 커다란 피덩어리가 떨어져나간 듯 마음이 후련해졌다.

즐겁게 떠나는 듯 화려한 미소를 남기고 한줌의 흙으로 남은 언니, 언니는 떠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먼저 갔을 뿐이다.

꽃을 보면 떠오를 언니, 하늘의 구름을 보아도 떠오를 언니, 손군들의 재잘거리는 밝은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언니의 미소는 진정 축복이고 희망이고 가르침이였다.

언니는 아프고 슬프고 서럽고 억울했던 모든 기억을 시간 속에 묻어버리고 미소로 굳어졌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푸른 잎도 언젠가는 락엽이 되고 예쁜 꽃도 언젠가는 떨어진다. 오늘 이 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부모형제와 자식들을 위해 인생 전부를 바쳤음에도 한마디 원망도 불평도 없이 아름다운 미소로 추억을 새기고 초연히 떠나간 언니, 언니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준 건 죽음이 아니라 인생이였다.

언니가 미소를 짓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베풀고 마음껏 추구했기 때문이 아닐가?

오늘도 언니의 마지막 미소를 떠올리며 미소에 새겨진 이야기를 되새겨본다.

 

20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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