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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  좋은 글  >  김련화의 수필-추억의 맛-두부
김련화의 수필-추억의 맛-두부
2020년12월01일 17:32   조회수:426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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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추억의 맛-두부

김련화

 


추억의 -두부

 

지인의 시부모가 집에서 멧돌로 콩을 갈아 만든 두부를 위쳇 모멘트에서 보면서 나는 애틋하고 절절한 나의 옛 추억들이 떠올라 뭉클했다. 평소에도 시장에서 자주 사먹을 수 있는 두부지만 집에서 손수 빚은 두부를 온 가족이 오붓하게 함께 앉아 즐긴다는 그 자체가 더 부러웠던 거 같다.

뜻밖의 사고로 돌아가신지 10년이 되는 아버지의 60세 생신날을 앞두고 나는 아버지 밥상에 생전에 그토록 즐겨 드시던 따뜻한 두부 한모도 대접할 수 없는 현실에 그저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다.

"두부대장"이라고 불리울 만큼 두부를 즐겼던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90년대 변변치 못한 살림에도 두부기계를 장만했었다.

콩을 한두사발 푹푹 깨끗씻어 하루 동안 불린기계로 갈아 냄비에 미리 준비해놓은 천보자기에 쏟는다. 힘껏 꾹꾹 눌러 미처 갈리지 못한 입자가 두부찌꺼기들을 걸러내고 천 보자기 사이로 미어져나온 새하얀 콩물을 가마솥에 쏟아넣는다.

그때면 아버지는 열심히 불을 지폈고, 어머니의 손놀림이 가마솥 위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자칫 불이 세지면 콩물이 ~ 올라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타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정성들여 저으며 조금만 콩물이 올라오는 낌새가 보이면 찬물을 끼어얹어 가라앉혔다. 반복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콩물은 익어가며 집안에 구수한 향을 구석구석에 전달했다.

콩물이 익으면 우리 세식구는 한사발씩 떠서 호호 불어가며 콩물 건배를 한다. 구수한 콩물 건배로 목을 추긴 두부 제조의 핵심기술인 간수(서시) 넣어 천천히 저어가며 형태를 만들어간다. 뭉글뭉글한 상태의 초두부(순두부)를 먹을 만큼 덜어낸 후 틀에 넣어 서서히 굳혀 네모반듯한 두부를 만들어낸다.

아버지, 어머니가 정성껏 밭에서 농사지어 거둔 콩,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되어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며 탈곡해낸 노오란 콩알들을 깨끗이 씻어 만들어낸 두부에 마늘, 고추를 송송 썰어 만든 마늘간장을 듬뿍 올려 따뜻한 밥과 함께 비벼 먹으면 그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어머니는 21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한테로 시집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면서 할머니한테서 전수받은 두부기술로 사흘이 멀다하게 두부를 하여 온가족이 먹거리가 부녹했던 세월을 이겨냈다고 한다.

재미있는 일은 하도 두부를 자주 하니 곁에서 눈여겨보던 아버지도 그후 “두부장인"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가족 중 특별히 두부를 즐긴 아버지는 이젠 더 이상 어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절로 팔을 썩 걷어올리고 뚝딱뚝딱 용케도 만들어냈다. 처음엔 콩물 젓기에 실패하여 살짝 태우기도 하고 간수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일그러진 형태의 두부를 만들어내군 했으나 차츰 제법 맛과 모양도 근사한 두부를 만들어냈다.

인심이 후한 부모는 손수 만든 두부를 자주 이웃에 나눠주군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미처 먹지 못한 모두부는 찬물에 담궜다가 이튿날 기름을 두르고 지글지글 두부전으로 구워냈는가 하면 보글보글 구수한 두부장국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두부는 그렇게 다양하게 변신이 되어 우리 가족의 사계절 주요리로 밥상에서 빠지자 않았다.

두부대장" 집안에서 자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산동성 연태에서 회사생활을 한지 2만에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고 홀로 남았던 어머니마저 한국으로 떠나면서 두부기계는 고향집과 더불어 한 마을에 살던 이웃에 팔렸다. 그후부터 다시는 부모의 손맛이 담긴 구수했던 두부맛을 보지 못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담겼던 두부, 내가 어렸을 먹었던 음식량에서 절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부지일 땐 갈리는 기계소리는 그렇게 소리가 셌던지 듣기 싫다고, 두부만 보면 신물난다고 심술을 부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 시절 두부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책임져주는 "수호천사"임을 몰랐을 ,

힘겹게 밭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번거로운 과정의 두부를 손수 만들어 늘 “우리 딸 두부 많이 먹고 건강하게 쑥쑥 커”하며 내 밥공기에 푹푹 숟가락 가득 떠주던 그 모습들,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철없는 그땐 왜 깨닫지 못했을까?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서야 세상에서 제일 순수하고 따뜻했던 부모의 사랑을 전부는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씩 깨닫는 것 같다.

환경오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 농약과 방부제 투성이인 먹거리들을 먹으며 자라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 부모처럼 음식 하나라도 정성을 넣고 최선을 다하여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한텐 너무나 특별했던 두부였기에 더욱 애틋하고 그립고 소중하다.

정말로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옛날 고향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께 내가 직접 두부를 만들어 동그란 나무밥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맛있게 먹고 싶다…

 

김련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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