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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  좋은 글  >  한춘옥의 수필-소밥그릇
한춘옥의 수필-소밥그릇
2020년11월19일 12:09   조회수:451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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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소밥그릇 

한춘옥

  

소밥그릇

얼마전 나는 박물관에서 신기하게도 조각 같은 고물인 대형 화분을 보게 되였다. 아물아물한 기억의 저편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마침내 실마리를 찾아냈다. 대추나무로 만들어진 대형 화분통의 전신은 바로 소밥그릇이였다. 농경시대에 하느님처럼 모시던 황소가 여물을 먹을때 쓰던 용기가 바로 소밥그릇 또는 소구유, 소구시, 소여물통인 것이다.

가운데는 여물을 담고 량옆의 자그마한 구멍에는 물을 담았던 소밥그릇이 버젓이 관상용으로 사용되는 영광을 지녔으니 예술로 승화된 셈이다. 소밥그릇은 살균천사인 편백나무나 차돌 같은 박달나무로 아버지가 정성을 담아 자르고 파고 깎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만들어진다. 마치 황소를 그림으로 그린것처럼 옆에 물을 담는 구멍은 황소의 퉁방울 눈 같고 여물 담는 가운데는 황소가 투레질하는 얼굴을 그대로 내려 놓은것 같다. 산에서 몇십년 동안 땅의 정기를 받은 나무는 아버지의 사랑과 인내로 투박한 농사군의 손끝에서 소와 마치 전생의 련인처럼 만난다.

소밥그릇에 담긴 아버지의 사랑은 황소와 같은 조용하고 우직한 성격으로 점철된다. 침묵과 미소로 사랑을 표현하고 평생 묵묵히 일만하신 우리아버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적인 동경은 강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차겁고 무뚝뚝해 보이기도 했다. 항상 배신을 용서 못하고 쉽게 변하지 않으니 생각이 깊으시고 현실적이여서 시골의 흙냄새가 팍팍 났다.

황소는 농경시대의 생산력이였다.

황소는 아버지가 잔등을 어루쓸며 중얼중얼 대화를 하고 사람처럼 밥통을 만들어 주기까지한 무척 아끼는 가축이였다. 그것도 재질이 좋은 나무로 가족이 쓰는 떡구유보다 더 크고 물까지 담을 수 있게 정교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에게 소가 여물 먹는 정겨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향수였다. 마치 장군의 밥상을 상기시 켜주는 대형 소밥그릇에서 마술사와도 같이 황소는 서걱서걱 소리나는 짚을 에너지로 변신시킨다. 여물을 끓여 마른 짚에 쏟아 놓으면 골고루 섞어가면서 맛있게 먹는 황소등을 두드려준다. 벼짚이나 콩깍지를 먹고도 자동차와 맞먹는 힘을 발전기처럼 축적하는 재주에 소는 생산력의 창조자로 인정을 받았다. 우직하면서도 듬직한 황소의 여물 씹는 소리는 소박하고 자률적인 자연의 소리로 다가왔다.

친환경의 화신인 소밥그릇은 순박한 인생을 살라고 일깨워주군 했다. 모든 생명 체의 밥그릇 중에서 가장 크고 멋스러웠다. 우물 같은 눈망울에 그윽한 사랑을 담고 멍에의 아픔을 숙명으로 달구지를 끌며 하나하나의 고개길을 잘도 넘었던 우리집 소. 이른봄이면 산과 들에 풀어 놓은 황소와 암소 그리고 그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송아지 까지 정겨운 황소가족의 산책을 바라보는 것은 병풍 같은 대자연의 예술을 감상하는 최고의 향수이다.

나이를 먹고 나서야 나는 황소가 우리 민족의 아버지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빈손으로 두만강 건너 간도에 와서 괭이로 땅을 뚜지고 식구들 먹여살리던 백의민족 아버지들의 두 어깨는 절벽으로 굳어져서 산이 되였다. 한 많은 세상살이에 아버지의 피땀은 물이 되여 흐르고 고난을 인내한 침묵은 암석으로 굳어졌다. 골수까지 쏟아내서 생명수를 뿜어내며 산에 들에 짙은 록음으로 숲의 터널을 이루게 하였다. 등허리 부러지게 달구지 끌며 시간 밖에서 사라진 황소가 걸어간 발자취는 우리 아버지들의 순박한 인생이였다.

소밥그릇은 고물이다

요즘 사람들은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상품보다 친환경적인 개성이 다분한 수공작품을 많이 선호하고 좋아한다. 좀 투박하지만 개성이 담겨 있는 화분으로 업그레이드된 소구유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소밥그릇은 새롭게 변신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오고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친환경적인 재 활용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물하고 생활을 예술과 접목시켰다.

지난번 나는 유럽려행을 하면서 고물을 높이 모시는 그들의 문화에 감동을 받았다. 장인정신으로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고물을 사용함으로써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한다. 스위스는 가는 곳마다 록색 잔디가 깔려 있고 파란 하늘에 흰구름도 그렇고 호수 밑바닥은 마치 전시장처럼 바라볼 수 있어 가는 곳마다 감동이였던 나에게 그래서 소밥그릇은 더욱 그리운 추억으로 안겨왔는지 모른다.

황소는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였다.

농군에게 소는 명줄이나 다름없이 애지중지하는 살림의 밑천이다. 밭갈이하는 봄철에는 찰떡을 쳐서 먹이는 특급보호동물이였다. 어찌보면 황소는 아버지의 형상과도 다름이 없다. 평생 소처럼 일만 하신 아버지는 소밥그릇도 손수 만드시고 당신의 쓰라린 고난도 소잔등을 어루쓸며 무언으로 멍에의 아픔을 나누었다. 아버지 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외양간을 찾아간다. 든든한 농사 뒤심이라고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아침밥을 먹였다. 그만큼 힘장수인 황소는 가축으로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고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소팔아 자식 공부시킨다. > 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소는 자식이 공부하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여주는 재산이였다. 소가 있으면 잘 사는 집으로 부의 상징으로 되였다. 집집마다 농사와 살림에 보배같 은 존재지만 가난했던 세월에 황소가 없는 집이 많았다.

소는 시골 농사군에게 든든한 뒤심이였고 멋진 풍경이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존재이기도 했다. 옛날에는 밭갈이 하고 곡식과 땔나무를 실어들이는 일은 황소가 담당이였다. 뿐만아니라 외출시 교통도구로 쓰이는가 하면 결혼식에 신부를 데려오는 승용차 대용으로, 장례식에 고인을 모시는 일까지 도맡아했다. 그만큼 가축대감인 황소에게 밥상과도 같은 구유가 차려지게 된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였다..

황소는 금메달이다.

봄 파종이 끝나면 단오절을 맞이하여 민속운동대회를 한다. 씨름판에서 가장 멋진 하이라이트는 붉은 천으로 만든 꽃으로 멋지게 장식한 황소가 우승을 기다리는 포즈이다. 씨름선수와 관중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으며 여유롭게 기다리는 황소는 진짜 멋진 신사이다. 씨름왕이 탄생되면 황소를 타고 한바퀴 도는데 이것은 최고의 인기짱인 풍경이다. 경사가 났다고 온 마을의 남녀로소가 춤을 추고 북과 징을 두드리며 신나게 씨름왕을 축복해준다. 세월이 흐르면서 황소를 숭배하고 황소처럼 살아오던 농경시대도 점차 기계화 시대로 넘어가게 되였다.

언제부터인가 현대화 농기구가 생산되면서 황소는 점차 밀리며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골짜기를 메우던 음메- 소리가 사라지면서 우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황소는 힘장사 기능을 가지고도 설자리를 잃었다. 팔간집 기둥과 가지런히 붙어있던 소 외양 간은 흔적을 감추었다. 주인을 잃은 소밥그릇도 자리를 비울 수 밖에 없었다.

황소는 새롭게 등장한다. 

요즘은 소가 또다른 각색으로 출현을 하면서 가치부여를 하고 있다. 민속절이거 나 대형행사에 황소 싸움이 경기종목으로 굳어지고 있다. 완전 모델 형상으로 거듭난 황소들이 번호를 달고 소싸움 경기장에 나서는 것이다. 몇만 원의 상금을 걸고 박수 갈채를 받으며 경기장으로 터벅터벅 입장을 한다. 황소 싸움이 굉장히 멋진 볼거리를 만들어주어서 경기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치렬한 싸움을 구경한다.

소싸움에 나서는 황소는 모델 신분이기에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소밥그릇 도 그만큼 주인을 잘 만나 가치상승을 한다. 하지만 옛날 소밥그릇은 변신을 했다. 더는 박달나무거나 대추나무로 된 소밥그릇은 볼 수도 없게 되였다. 아버지의 화신인 황소는 영웅각색을 하는 싸움소로 둔갑을 한 것이다.  

소밥그릇에서 피여나는 꽃을 보니 어쩐지 아버지의 구부정한 뒤태가 떠오른다. 산처럼 가족을 묵묵히 지켜주고 소처럼 일만 하신 아버지가 당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소구유를 박물관에서 보면 어떤 기분일가 ? 아마도 주인을 잃은 소밥그릇을 만지면서 화려한 꽃의 향기보다 우직한 소의 체취를 그리워 할 것이다. 그래도 소와 멀어진 소밥그릇이 박물관에 소장되여 추억이 묻어나는 어여쁜 꽃을 피우고 있으니 놀라면서도 미소는 보일 것이다.

민속의 골동품과 인테리어로 거듭난 소밥그릇을 보니 나는 아버지가 많이 그리워진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손이 갈라터지면서 만든 소구시인데… 평생 고생만 하시고 가신 아버지의 흔적 같아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황소의 투레질도 달게 받아들이던 소밥그릇은 인젠 갈라터진 틈서리에 세월이 녹아내린 흙으로 메워진다. 소밥그릇에 꽃을 아니 우주를 담았으니 아버지도 함께 할 것이다. 이승의 강을 건너는 마지막까지 순박하게 사신 아버지는 하얀 두루마기 같은 저 하늘 구름처럼 비와 이슬이 되여 이 땅을 촉촉하게 적셔줄 것이다.

아아, 추억의 소밥그릇이여!

<장백산> 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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