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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  좋은 글  >  향기의 정원-냄새
향기의 정원-냄새
2020년11월15일 16:49   조회수:250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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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냄새 

이홍숙

  

냄새


냄새란 코로 맡을 수 있은 온갖 기운을 말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사람은 냄새를 맡는 후각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주 적은 농도로 화학 감각 수용기를 자극하는 어떤 물질의 속성이라고 알려진 냄새는 우리의 코 즉 후각기관을 통하여 대뇌에 전달되고 대뇌는 그걸 지정된 어떤 냄새로 기억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개코”라는 별명을 갖고 다녔다. 방과후 집에 돌아오게 되면 문밖에서부터 가마 안에서 맛있게 끓고 있는 저녁메뉴가 무엇인지 알아맞출 정도로 후각기관이 뛰여다. 옥수수 삶는 냄새, 추어탕 냄새, 된장국 냄새, 심지어는 흰쌀밥도 묵은쌀로 한 건지 햇쌀로 한 건지 알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개코라는 별명에 걸맞게 냄새는 나에게 있어서 그냥 단순 냄새로만 인지된것이 아니라 또렷한 추억거리를 만들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어린시절 비록 째지게 가난했지만 당시 우리 집은 4대가 함께 사는 다복한 가정이였다. 그 때 신통한 모기약이 없었던 연고로 여름이 되면 우리는 쑥을 말려다가 불을 피워 모기를 쫓군 했었다.물론 쑥이 타오르는 냄새에 눈이 시리고 코가 싸해 나기도 하지만 그 냄새는 지금에 와서 맡아도 그렇게 정겨울수가 없다. 쑥이 타오르는 주위에 가족들이 오구작작 모여서 웃고 떠들던 추억이 있었으니까말이다. 그래서 쑥향은 나로 하여금 로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 가족들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냄새이기도 하다.

그리고 된장찌개 냄새와 배추겉절이 냄새는 주방담당이였던 우리 할머니 냄새다.가난했던 시절이였음에도 손주가 보채면 그 무엇이든 맨발바람으로 뛰쳐나와 원하는 모든것을 채워주시는 사랑의 냄새였다.

내가 일곱살 때 아버지는 간경화복수에 걸려 앓아눕게 되였다. 많은 식구들의 생활비와 아버지의 병원비를 장만하느라 엄마는 장사라는 장사는 닥치는대로 다하며 억세게 일하였다.

어린나이에 일찌감치 철이 들어 나는 다망한 엄마를 도와 뒤바라지 일을 했다.몸이 많이 아팠던 아버지는 쩍하면 화를 내며 링게르병을 벽에 던졌다.유리쪼각이 온바닥에 흩어지고 비릿한 그 링게르액이 마구 흘러나왔다. 그래서인지 링게르 냄새는 슬픔의 냄새였다. 눈물과 한숨, 그리고 어린나이에 감당하기엔 어려웠던 고난의 냄새였다.

십대에 접어들면서 나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맛 있는걸 먹고 싶었고 예쁜 옷도 입고 싶었다.하지만 병상에 계시는 아버지 병원비에 할아버지 약값까지 얹혀있어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터라 속으로 하고 싶고 소망했던 모든것들을 잠재워야 했다. 점심식사비를 절약하기 위해 어머니가 시장에서 제일 싼 라면을 사다가 나에게 점심식사용으로 허락해주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점심마다 친구들이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는데도 나는 혼자 남아 라면을 먹어야 했다. 그런 리유에서일가? 라면냄새는 나에게 있어서 또래 애들에게서 소외된 외로움의 냄새였다.

그뒤로 몇년이 지나 찌는듯 무더웠던 여름의 어느 하루, 장기환자로 병상에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자 우리 집은 기둥뿌리가 뽑힌 집처럼 언제 무너질지 위태롭게 되였다.엄마는 눈물샘이 말라 더이상 흘릴 눈물조차 없었고 장사를 치르는 내내 사흘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구토만 했다. 관을 내갈 때에도 옆집 아저씨들이 와서 장사를 대신 치러주면서 박을 무작정 밟아 깨뜨렸던 기억이 있는데 박이 깨지면서 텅빈 박속이 드러나고 약간은 노릿한 냄새가 나면서 현기증이 심하게 몰려와서 휘청했었다. 그래서일가 박이나 말라 비틀어진것을 볼때마다 불길한 냄새를 맡는것 같았다.

그 후 고향을 떠나게 되였는데 몇년이 흘러간 뒤에 아버지가 홀로 묻힌 고향에 찾아가게 되였다. 때는 살을 에이는듯 북풍이 휘몰아치던 을씨년스러운 겨울이였다. 스산하고 어두컴컴한 시골의 굴뚝에서 석탄 타는 냄새가 물물 풍겨나왔다. 그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순간 풀이 누렇게 말라붙은 논두렁에 우두커니 서서 눈물범벅이 되여 울고 또 울었다. 왜 그렇게도 눈물이 났을가?아버지가 석달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던 바로 그날, 불이 제대로 붙지 않은 부엌 아궁이에서 석탄땐 연기가 뭉게뭉게 새여나왔다.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고 있던 내가 있었다.그래서인지 석탄 타는 냄새는 짙은 그리움을 자아내는 냄새였다.

첫사랑 실련의 아픔으로 몸과 마음이 피페해져 고통스러울 때 몇달동안 말없이 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 나에게 삼겹살 삼인분을 시켜 나의 배를 톡톡히 불려준 남자가 있었다.그 때 그 삼겹살은 허기진 배만 달래줬던 게 아니라 아픔에 시달리고 있던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그래서 삼겹살 냄새는 지치고 앞길이 막연해질때 세상에 그래도 내 편이 있노라고 호소해주며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해주는 위로의 냄새였다.

그래서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난, 내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됐고 떡두꺼비같은 아들 둘을 보았다.목욕을 시키고 오일 마싸지를 해주고 베이비 파우더를 발라주면 뽀송뽀송 하아얀 피부를 드러내고 방글방글 웃는 녀석들 덕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실실 웃는 일이 자주 생겼다.그래서인지 베이비 파우더 냄새는 내게 있어서 행복의 냄새였다.

결혼뒤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터라 남편은 점차 술자리가 잦아졌고 주량이 별로였기에 만취해서 집에 돌아오는 일이 많아졌다.술에 많이 취한 날에는 전화를 걸어와 나에게 꼭 집 앞 대문까지 마중 나오라는 부탁을 해오군 했다.남편은 인사불성이 되였어도 집주소와 마누라만은 꼭 기억하고 있었다.혀가 꼬여 나를 “우리 마눌”이라고 불러주었는데 그 때마다 약이 오르고 화가 나서 내가 “오늘 만큼은 여우이길 포기하고 곰이 될래.” 하면서 남편 엉덩이를 가차없이 두드렸다.손이 오뉴월 고추보다 더 매운 마누라에게 엉덩짝을 맞으면서도 “우리 마눌만세”를 연신 부르짖는 남편’덕분’에 밤을 새하얗게 지새울때도 있었다.그래서 술냄새는 내게 평안과 안스러움이 교차된 달콤한 냄새였다.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딱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구나 할것없이 달려들어 딴다는 운전면허증을 따보려고 나도 운전을 배우러 갔던 적이 있다.당시 운전을 가르치는 교련원은 마흔을 갓 넘긴 본지방 사람이였는데 성격이 어찌나 란폭했던지 운전을 가르치는 내내 심기를 건드리는 하는 쌍욕을 무진장 뱉어내 귀가 아프고 신경이 곤두섰다.

세번째 실기시험을 하루 앞두고 밖에서 바쁘게 일 보고 있는 나에게 교련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튿날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시험장 실내지형을 익히러 가야 한다고 했다.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 따라 밖에서 바삐 돌아치다 나니 미처 운동화도 갈아신지 못하고 굽이 6센치나 되는 부츠를 신은채 헐레벌떡 시험장에 뛰여갔다.교련원의 눈길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있던 찰나, 아니나다를가 교련원이 당장 가서 신발을 바꿔신고 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슬슬 약이 오르고 반발심이 솟구쳐올라 아무 대꾸없이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는 집요하게 쏘아보는 교련원에게 부릅뜬 도끼눈으로 맞장을 뜨면서 부츠를 휙 벗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맨발의 투혼을 했다. 그렇게 모질게도 욕을 해대던 교련원이 갑자기 눈이 퉁방울만해지더니 허둥지둥 쫓아가 땅에 팽개쳐버린 내 부츠를 주어 손에 들었다.그리고는 조수석에 앉아 내가 날쌔게 질주를 하는 내내 나를 곁눈질하며 낄낄거리는것이였다.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을텐데 왜 내 부츠를 굳이 주어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그런데 맨발의 투혼까지 그렇게 불사르며 련습했으면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시험장 활주로를 돌면서 지도해주기는커녕 엉뚱한 내 행동만 지켜보며 낄낄거리던 그 교련원 덕분에 나는 실기3에서 두번이나 떨어지고 말았다.아마 그 교련원이 그 뒤로 부츠 냄새만 맡으면 어느 한겨울에 당돌했던 녀자를 떠올리지 않을가 싶다. 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시는 차를 배우러 온 녀성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지...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둘째아들이 사고를 쳤다.선생님 호출에 눈섭을 휘날리며 학교에 뛰여갔다.외국어를 가르치고 있던 외국어교사가 교수를 그만둔 뒤에야 알게 된일이지만 영어시간에 외국어교사가 아들의 무릎에 앉아서 장난을 쳤고 그걸 성추행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많은 학생들앞에서 선생님에게 무안을 줬다는것이다. 알고보면 사고를 친건 리유가 있었는데 평소에 성적을 강조하기보다는 인성교육을 더 중요시해왔던터라 나는 그런 아들의 사고에 대해 도저히 그대로 넘어갈수가 없었다.학교대문앞에서 조용히 아들을 불러냈다.헌데 이 녀석이 글쎄 손을 바지춤에 찌르고 멋 있는척 서있더니 자기가 친 사고는 리유가 있고 수습을 하더라도 남자인 자신이 알아서 할테니 엄마는 나서지 말라고 하는것이다.내 속은 까맣게 타서 재가 되는데 차마 왜 그렇게 했느냐고 휘두르고 혼낼수가 없었다.선생님께 머리숙여 사과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찾았다는 내말에 아들녀석은 급기야 닭똥같은 눈물을 떨구었다.위로가 필요한 타이밍이지만 그렇다고 혼내지 않고서는 안될거 같았다.하여 차분하게 조곤조곤한 어투로 두번 다시 학교에서 이런 호출이 오면 자식 잘못 키운 엄마 죄가 제일 크니 결혼때 입었던 촌스러운 한복을 입고 한복자락을 휘날리며 학교 운동장에 엎드려 전교학생앞에서 석고대죄하겠다고 알렸다.그 말을 듣고 아들녀석은 순식간에 멍해있었다.몇초나 지났을가. 눈물을 뚝뚝 떨구던 아들녀석의 눈꼬리가 갑자기 휘어올라가는가 싶더니 미친듯이 웃어대 는것이였다.촌스러운 한복이 두려웠던것인지 아니면 석고대죄가 창피했던것인지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 이후로 녀석은 학급에서 모범생이 되였다.

최근에 들어서서는 아이들과 소통하느라 자주 대화를 하는 편인데 애들 아빠가 출장가고 셋이 앉아서 진실게임을 하던 어느 날,아들이 내게 수줍게 고백을 해왔다.

엄마 몸에서는 아주 특수한 냄새가 나.슬픈 일이 닥쳤을 때 슬프지 않게 할수 있는 그런 냄새 말이야.이런 걸 두고 엄마냄새라고 해야 하나?”

그래,아마도 그거였나 보다.아들에게 있어서 내 몸에서 나는 냄새는 슬픈 일이 있을때마다 그것을 치료해줄수 있는 위로,사랑,긍정 그리고 유머의 냄새였일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그 냄새는 여우됐다 곰됐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스러운 냄새로 기억이 되였을 수도 있다.그리고 우리 엄마한테는 딸이지만 아들 역할을 해야 하는 이 딸에게서 나는 냄새가 든든한 기둥의 냄새였을것이다.

이렇듯 기억 한조각에 냄새 한조각, 내인생의 스토리는 모두 냄새로 구성되여있었다.슬픔,탄식,눈물,서러움,고통,외로움,위로 그 모든 스토리는 냄새와 연결이 되여있었다.그리고 그 기억 한조각 한조각이 퍼즐처럼 맞춰져 알알이 익어가는 내 인생이 되였다. 하기에 굴곡지고 어려운 인생려정을 걸으면서 그 가운데서 행복과 삶 속의 지혜를 찾아가는 냄새의 매력에 매혹이 된게 아니였을가 싶다.

세상을 살아간다는것은 내 자신만의 냄새를 풍기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주위 사람에게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으며 내 주위 사람들은 그 냄새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가?

이건 아마 나머지 생을 살아가면서 사색하며 열심히 풀어야 될 숙제가 아닐가 싶다.남은 생을 고군분투하며 나만의 향기 그윽한 냄새를 만들어가고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나만의 향기 물씬 머금은 냄새를 무진장 풍기고저 한다.이왕이면 주위사람들에게 사랑,온기,위로,격려,배려,겸손 등 긍정적인 힘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 구미가 바짝 당기는 달콤한 냄새였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리고 어린시절 “개코”라는 그 별명에 걸맞게 지혜롭게 세상 사는 방법을 물색해가는 냄새를 아는 진정한“개코”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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