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외1수)
강희선
감나무
늦은 귀가 길에
초롱불을 들고 선 모습
당신을 닮았습니다
갈바람이 서걱거리는 초저녁
부서지는 달빛을 사려물고
추위를 씹고 있는
귀뚜라미의 마지막 울음소리가
사각거리는 풀틈으로 사라질 때
홀로 초롱불을
켜켜이 켜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선 당신
바람잦은 언덕길에
하나 둘씩 꺼져가는 초롱불
어두움보다 더 짙은 두려움이
저벅저벅 검은 미로를 지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 올 때면
고향집 그 언덕우에
늘 서있던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제 마지막 초롱불 마저
바람에 흔들리다
사그라들 때면
더 가까이 다가오는
이별의 계절
기대고 싶은 당신을 닮았습니다
억새
촘촘히 세워진 울바자 사이로
새어나온 쓸쓸함을
온 밭에 하얗게 뿌려놓은
엄마의 잔소리가
넉두리처럼 널려있습니다
가슴속에 삭히고 삭혔던
길고 긴 한숨같은 푸념들을
줄느런히 늘여놓고
밤잠 설치는 별무리들과
뒤척이며 술렁이는
황야의 파도
바람에 휘청휘청
혼심을 다하여
온 몸을 풀어풀어
못다한 이야기로
이 가을을 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