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변경]
업체입주
위챗으로 스캔하기
업체입주
등록
위챗으로 스캔하기
등록하기
포스트  >  좋은 글  >  한춘옥의 수필문학-어처구니가 돌리는 맷돌
한춘옥의 수필문학-어처구니가 돌리는 맷돌
2020년11월01일 13:29   조회수:276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ZOA Post Icon-02.pngZOA Post Icon-03.pngZOA Post Icon-04.pngZOA Post Icon-06.pngZOA Post Icon-05.png

   

수필

어처구니가 돌리는 맷돌

한춘옥

 

어처구니가 돌리는 맷돌

집안 가득 그윽한 향기를 날리며 사락사락 절도 있게 돌아가는 맷돌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온다. 엄마 손때 묻은 맷돌은 기나긴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돌아가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맷돌은 생활 속에서 사용하기에는 비효율적인 물건이요 단지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테리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 산동성 청도의 해안선에 어처구니는 자연의 맷돌을 하루도 쉼 없이 잘도 돌리고 있다.

맷돌은 신석기시대의 <갈돌>과 <갈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편평한 돌 두개를 위아래로 겹쳐놓고 아랫돌의 중심에 박은 중쇠에 윗돌 중심부의 구멍을 맞추어 손잡이인 어처구니로 회전시킨다. 마치 부부가 서로 만나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둥글게 둥글게 갈아가 듯이.

요즘의 커피세대들, 자판기세대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맷돌이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맛깔나는 음식을 하는 생활필수품이 이 보물이었다.

지금은 믹서기가 자리바꿈을 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돌고돌아야 했던 맷돌은 <골동품> 으로 민속박물관에 모셔졌어도 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엄마의 삶을 분쇄하면서 가족들의 주린 배를 채우고 생활의 편리와 윤택을 가져 다 준 맷돌은 참 많은 옛말을 갈아냈다. 어쩌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서로 마주앉아 맷돌의 어처구니를 돌리며 가난을 갈고 고부 갈등을 갈아냈으리라. 단단한 돌로 다듬 어진 맷돌은 이민의 삶과 설움을 갈아내며 인내와 사랑을 키워냈을 것이다. 아이들은 사락사락 돌아가는 맷돌소리만 들려도 맛있는 밥상을 상상하면서 달콤한 군침을 흘리며 코를 벌름거렸다.

어린 시절 딱딱한 콩알을 부드러운 젖빛 두부로, 까칠한 메밀을 매끌매끌한 묵으로 변신시키는 맷돌의 마술이 너무도 신기했었다. 엄마는 무더운 삼복 여름철에 메밀을 물에 불려서 맷돌에 곱게 갈아 묵을 만든다. 암맷돌과 숫맷돌이 서로 껴안고 갈아 만든 묵은 천하일품이다.

어디 그뿐이랴. 들깨와 콩을 갈아서 고소하고 선들선들한 콩물을 만든다.

물같은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것이 <먹새>!하면서 신나게 묵 그릇에 바가 지로 콩물을 푹푹 떠 담는다. 콩과 메밀에 삶도 조곤조곤 갈아내시는 아버지는 허허, 하하 만족스럽게 웃으시며 많이 먹어라” 가족들에게 인정을 팍팍 심어준다.

암맷돌과 숫맷돌이 서로 껴안고 수많은 충돌과 마찰이 만들어 낸 부침개와 떡, 묵과 두부는 우리에게 진수성찬이었고 천국 같은 행복이었다.

세대주들은 빙빙 돌면서 비벼 갈아내는 화해의 맛과 멋에 한 가닥 곤두서는 자신감을 키웠다. 덕분에 자식 농사와 벼농사를 부지런하게 잘도 하셨다. 아마도 부드러운 두부에 양념장을 듬뿍 올려놓고 술잔을 쭉쭉 내면서 체력을 키웠는가 보다.

엄마의 긴긴 날설움은 하나로 망울져 하냥 사락대는 맷돌소리에 마음 싣고 부모형 제와 생이별한 애통함과 그리움을 갈고 갈았다. 부대끼며 마찰로 돌아가는 맷돌에서 여유와 인정을 터득했다.

부모님의 깊은 마음을 알 수 없는 나는 두부콩을 갈 때면 그 냥 신나는 놀이처럼 덤벼본다.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돌리지만, 둥글소 처럼 떡 버티고 선 맷돌은 심술 부리며 어처구니 없는 나를 골탕 먹인다.

엄마와 마주앉아 어처구니를 잡고 돌리면서 나는 여유의 매력에 인정이란 따뜻한 선물을 받았다. 맷돌은 욕심 부리지 않고 물과 콩의 맞춤형에 따라 적절하게 걸쭉한 콩즙을 갈아낸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조급해서 맷돌 아가리에 콩을 많이 넣어준다. 변성기 같은 이상한 소리와 더불어 콩알맹이가 줄줄 흘러나온다. 머들머들한 콩짜개 가 보이니 엄마는 나를 흘겨보며맷돌을 속이려구?하면서 옆구리에 흘러나오는 콩즙을 숟가락으로 아가리에 떠넣는다. 맷돌은 성실과 기다림을 가르치는 어르신 처 럼 참신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요즘은 빨리빨리 공회전을 어지럽게 돌리며 여유와 정을 많이 잃어버리는 어처구니 가 많다. 급속히 발전하는 현대문명과 물질 추구로 세상이 많이 각박해진다. 맷돌 같은 부대낌에서 화해로 가는 옛날 부모님들 처럼 서로 껴안고 따뜻하게 살아보고 싶다. 단번에 갈아버리는 믹스기보다는 맷돌이 갈아내는 구수한 맛과 멋이 그립다.

청도의 앞바다 해안선을 바라 보면서 바다와 육지의 멋진 맷돌에 빠져들게 된다. 하얀 포말은 엄마의 넋이 되어 파도 어처구니를 끝없이 돌린다. 암맷돌 바다와 숫맷돌 육지는 서로 껴안고 수많은 충돌과 마찰로 백사장을 펼친다. 바위를 갈아내는 파도 속에서 아침해를 맞는 맷돌아, 우리마음의 애환과 갈등을 갈며 여유와 정으로 사락사락 돌고 돌아라!

 한춘옥.jpg



포스트 아이디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소개
청도작가협회
추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