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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금의 수필-술,그 멋
2020년09월21일 12:19   조회수:249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수필

술,그 멋

정순금

 

술 , 그  멋

 

 

벽 하나를 사이둔 영란이네 집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벌떡 일어나 벽시계를 보니 시침이  6시 정각을 가르키고 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흘러간 옛노래다. 귀를 기울리고 들으니 오늘은 김성환의  “한잔 술” 이다 .

 “오늘은 그만하려 했는데

  작심하며 그만두려 했는데

  한잔 술이 또 한잔 술이

  건화하게 취했구나

  그래그래 한잔 술로

  꾹꾹 누를 수만 있다면

  그래그래 취하고 나면

  툴툴 털어버릴 수만 있다면

  어디 너를 원망하랴”

 김성환의 “한잔 술”이 오늘 따라 귀맛을 당긴다.

 (그렇지, 나의 인생에서 한때 술이 큰일을 해냈었지)

  이쯤 나의 글을 읽어본 독자들은 아마 나란 작자를 젊은 시절의 애주가 혹은 남성기질을 가진 호방한 녀자가 아닐가 하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기실 나란 사람은 젊은 시절 담이 너무 작아 남들 앞에 감히 나서지를 못하고 더더욱 술은 범접도 못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나는 지지리 복도 없었다. 7살때 아버지를 잃고 잔병 많은 엄마를 돕느라고 그 어린 나이에 1살나는 남동생을 업고 3살난 녀동생을 앞에 걸리고 동네로 심부름을 다녔고 8살 입학하는 날에도 혼자 동생들을 업고 앞세우고 학교로 갔다.

아버지가 없어 동갑내기들한테서 천대도 많이 받아 기가 죽을 대로 죽어 남들이 묻는 말도 감히 대답도 못하고 남들 등뒤에서 소동작만 했었다. 학교에서 억울함을 당했어도 집에 돌아와 엄마 앞에서 하소연도 감히 못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에는 남몰래 리상을 품고 있었다. 공부를 잘해 장차 교사로 되여 멋 모르고 까부는 자식들을 단단히 혼내주리라고 윽별렸다.

아니나 다를가, 나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사범학교에 가게 되였고 졸업하고 난뒤 당당한 인민교사로 교단에 서게 되였다.

 사회에 발을 내디디고 보니 생각해 본적 없던 술과 접촉하게 되였다. 주말의 학교 교사들의 회식, 학부형들과의 회식에서 못 마시는 술잔도 받아보고 밥상 분위기를 깰가봐 눈을 찔끔 감고 술맛도 보기도 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자연스레 술상에 앉기도 하고 맛보던데로부터 쭉쭉 마시기도 했다. 헌데 당시 위가 약한 나는 뒤감당이 힘들었다. 하여 술이란 몸에 해로운 물건이라고 생각되여 몇년을 술을 피했다가 재다시 인연을 맺게 되였다.

 남편 따라 지구 강철공장 종업원학교에 전근 가서 정치교사로 8년째 되던 해 공장에서 새집분배가 있었다. 우리 내외가 근무하는 종업원학교에 명액이 하나 내려왔다. 그 명액을 교령이 2년밖에 안되는 체육교사가 가지게 되였다. 교령이 10년도 넘었고 내외가 다 국가 간부인 우리가 집을 얻지 못한 것을 안타가워 하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공장 령도를 찾아가 사정해 보라고 권고했었다. 말수 적은 남편은 제한된 집을 찾아간다고 줄 수 있나, 이미 끝난 일인데 명년에 집을 얻으면 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나는 생각할수록 억울한 생각만 들어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이틀밤을 뜬눈으로 보내다가 사흩날 아침에 남편이 먼저 출근한 뒤 술을 빌어 담을 키워보려고 로배갈 (老白干) 1 량 술잔에 넘쳐나게 붓고 한모금에 다 마셔버렸다. 술은 마셨어도 얼굴에 오르지 않아 천만 다행이였다.

나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아니 감히 가보지 못했던 당위서기 사무실을 찾아가 노크했다. 공장 당위 류서기가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묻자 마자 나는 익숙하지 못한 중국어였지만 찾아온 리유를 다섯손가락을 꼽아가며 간단명료하게 알렸다. 제한된 집을 이미 분배도 끝났으니 금년에 달라고 무리하게 요구 안하니 명년에는 꼭 분배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부탁에 물론 남이 이미 얻은 집을 절대로 가로채지는 않는다는 성명도 빼놓지 않았다. 류서기는 다 듣고 나서 내가 책임진 집 분배 령도 소조에서 조사와 료해가 부족해 생긴 문제이니 자신의 불찰이라고 반성도 하고 나서 돌아가서 통지를 기다리라고 말했다.

오후 퇴근 무렵 학교 교장이 만면의 희색을 띄고 기쁜 소식이 왔다며 나의 손에 분배된 새집 열쇠를 넘겨주었다. 당시 곁에 있던 선생님들 모두 기뻐서 환성을 올렸다. 그날 저녘에 공장에서는 나에 대한 뉴스가 퍼졌다.

“종업원학교에 조선족 녀선생님이 떳다” 

 술을 빌어 큰 일을 해낸 뒤 나는 술에 대해 점차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부르는 술 좌석에 마다하지 않고 찾아 갔었고 심지어 내가 주동적으로 술좌석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체험을 통해 술이란 것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들고 또 술로 진심을 교류하게 하는 멋진 것도 있는 이외에도 술좌석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할 것인가도 깊이 생각하게 하며 술좌석에서 마음껏 서로를 위로도 한다는 것, 술을 마시면서 나눈 따뜻한 말이 가슴의 응어리도 풀어준다는 것도 알게 되였다. 그리고 좋은 환경에서 맘 맞는 친구끼리 술을 마시면 그 시간만은 편안하고 행복하여 뿜어나오는 술의 향기에 푹 취하고 싶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이 40이 넘어 새로운 사업터인 시 교원연수학교 민족교연실에 출근하면서 부터 술에 대한 료해가 더 깊어졌다. 직업이 조선어 교연원으로서 자주 린근 중소학교에 내려가 수업을 들어야 했다. 수업상의 문제들을 조사하고 료해할 때 말을 아끼던 일부 교사들이 오찬이나 만찬에서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면 속심의 말을 도도하게 털어놓는다. 심지어 가슴에 응어리로 되여있었던 가정의 불화마저도 서슴없이 털어놓아 듣는 사람의 동정을 받아 들여 언가슴을 녹이고 희망을 갖게 했다. 하여 나는 술이란 참으로 멋이 있다는 것을 심심히 느꼈다. 물론 세상거래를 술로 하거나 술중독자들이 몸을 망치는 등 폐해도 있지만 호상간의 우정 교류가 더 많고 술좌석이 호상간의 정을 돈독하게 쌓을 수 있으며 술좌석이 언제나 재미가 있다는 것을 더 깊이 느끼게 되였다.

 직함 평의때 있은 일이다. 30여 년을 향중학교에서 물리교사로 있은 한분이 54세가 되였지만 고급직합평의에 참가 못했다고 했다. 중학교 고급교사 조건에 도달했지만 수년간 이 학교에 명액을 안주었다고 한다. 교학 능수 선발 평심원으로 갔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돌아오자마자 교연실 주임께 정황을 회보하고 주임과 함께 교육 국장을 찾아갔다. 교육 국장은 몇년 전에 교원연수학교 교장이였다..우리는 원래 익숙한 사이에다 국장이 연변음식을 특별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연변랭면식당으로 안내했다. 술을 한잔 두잔 하다가 재미난 권주까지 들어가다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소통이 잘 되였다. 재미나는 지난 스토리도 서로 나누었다. 스토리에서 모 령도의 리더십에 대한 평 가도 나왔다. 기회를 노리던 나는 주저없이 본 문제를 꺼냈다. 귀를 기울이며 듣던 국장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지는듯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두손에 땀을 쥐고 서로 쳐다보며 어쩔바를 몰랐다. 그런데 국장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여나왔다.

“왜 인차 회보를 안했어요. 지금 늦지는 않았어요. 평의 마감날이 아직 3일 남았으니 당장 당신네들 내려가서 그 선생님의 자료를 정리해 올려 오세요. 이게 다 내가 향중학교를 소홀히 한 탓이요”

  그해 늦가을에 그 물리 선생님은 중학교 고급교사 자격증서를 받았다.

 상술한 일이 있은 후 나는 술을 더욱 사랑하고 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술이란 한 사람의 약한 담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술이 통하면 상호간의 소망도 이루어지게 하며 의리도 깊어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하여 나는 술이 멋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퇴직을 한 후에 여유가 많으니 자주 주류상점에 다녀본다. 특히 행사때에는 매일 나간다.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좋은 술 할인할 때 사들이면 고급술의 향기로운 맛도 보니 일거량득이다. 로배갈밖에 몰랐는데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주류가 많다. 그것도 보통 술이 아닌 명품 술이다. 모태술, 오량 액, 수정방, 서풍술, 오량특곡, 몽의랑, 고정공, 랑술…이 중에도 나는 서풍술을 좋아한다.

언제 한번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께 서풍술을 사들고 갔었는데 선생님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제일 좋아하는 술을 맞보게 되였다고 호탕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이 자꾸 떠올라 명절때면 나의 선생님과 어르신들 찾아뵐 때면 나는 꼭 서풍술을 들고 간다. 좋은 술은 천원도 넘는다. 월급으로 살아가는 나는 할인하는 행사때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백원짜리 몇장씩 할인하는 서풍 술을 서너병씩 사들인다. 어떤 친구들은 나한테 건강에 별 도움이 안되는 술에 어째서 관심이 그리 많냐고 묻는다.

 그렇다.우리 이 세대 사람들은 거개가 술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 가난했던 그 시기에 적지 않은 남정들이 술좌석에 앉으면 빈속에 술을 잔뜩 마시고나면 새기지 못하고 술 주정을 하면서 큰길을 휩쓸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시대에 따라 술에 대한 평판도 다르다. 시대 발전에 따라 술의 질도 향상했다. 기분좋게 마시는 장소 선택도 다양하다. 하여 술의 그 맛과 멋이 따라가고 있다. 아늑한 장소에서 좋은 술을 마실 때면 술의 맛이 향긋함을 느끼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

 주방에서 아침준비를 하는데 김성환의 ” 한잔 술” 이 더 크게 들려온다.

“…………………………………

훨훨 털어 버릴수만 있다면

그래 그래 한잔 술로

꾹꾹 누룰 수만 있다면


정순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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