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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혁의 수필-여유의 자유
2020년09월17일 19:16   조회수:102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수필

여유의 자유

이문혁

 

여유의 자유

 

얼마전 우연이지만 매우 의미 깊은 시 한 수를 읽게 되었다. 내 마음에 꼭 와닿는 시었다. 영국 방랑걸인 시인 월리엄 헨리 데이비스(1871-1940)의 “여유”라는 시이다.

근심으로 가득 차, 가든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있는 양이나 염소처럼 한가로이 펼쳐진 풍경을 

차분히 바라볼 틈도 없다면  

숲을 지날때 

다람쥐가 풀숲에 도토리 감추는 것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해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처럼  별들 반짝이는 시냇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다정한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입가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주 멋진 방랑 시인이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자연도 즐기고 삶도 즐기고 인간관계도 즐기는 여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인생을 즐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언제부터일가? 우리 생활속에 “빨리”라는 것이 찾아와 뭐든지 빨리 해야 된다는 것이 몸속에 젖어있게 되었다. 고속에서 초고속으로 발전한 기차의 속도처럼 우리들의 리념도 무의식중에 시대의 빠른 템포에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완전히 초고속 사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아무튼 속도는 경쟁력이였고 영광을 가져다주었으며 또 명예를 가져다 주기도 하었다.

사실 빠르다는 것이 주는 혜택이 적지 않다. 90년대 초반 고향 할빈에서 청도로 오려면 기차를 타고 꼬박 3일이 소요되던 것이 이제는 12시간도 채 안되어 청도에 도착할수 있게 되어 시간적으로 예전에는 아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택배, 배달음식, 심부름센터 등 빠른 서비스로 새롭게 탄생된 업소들이 우후죽순마냥 나타나게 되였고 그런 업체에서 거의 빛의 속도 못지 않게 빠르게 움직이면서 일처리하는 모습들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렇게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속도에 중독되고 속도 예찬론자가 되기 일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혜택만큼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모든것을 빠른 스피드에만 집중하다보니 사고 또한 종종 유발시킨다.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뉴스 통해 “과속”으로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사건사고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으나 결국 과정보다는 결과를, 그것도 뭐든지 빨리 만들어내려고 했기때문이 아닐가.

빠른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긴장과 희생이 필요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은 어느 순간 끊어지게 마련이다.

빠른 사회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우리사회를 소진시키거나 도태시킬수도 있다. 고속도로에 설치되어있는 휴계소처럼 잠시나마 속도를 줄여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고 차를 정성들여 잘 정비후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달릴수 있도록 주유도 해야 한다. 고속도를 달리는 차가 휴게소에 들려 차에 주유하듯이 우리들의 생활속에도 자신만의 휴계소가 필요하고 그 휴계소에서 주유도 필요하다. 

중국 속담에 욕속즉부달(欲速)이란 말이 있다. 빨리 하려고 하면 오히려 도달하지 못한다.

산이 좋아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미 몸으로 체험해 알고 있다. 산을 타려면 느려야 즐길 수 있다. 산을 오를때나 내려올 때 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자연의 아름다운 광경을 눈으로 마음으로 느낄수 있는 법이니까. 음악 또한 그렇다. 깊은 울림과 긴 여운은 느린 음악에서 나온다. 요즘과 같이 빠른 율동과 속사포 같이 내뿜는 랩이 어울어진 빠르기만 한 음악은 자극적이기만 할뿐 나로서는 듣고나면 공허하다고 느껴질때가 많고 아예 두번 다시 듣기 싫어지기 십상이다. 그와 반면에 흘러간 옛노래나 또는 잔잔한 카페음악을 들으면서 따뜻한 우후 창가에 앉아서 취미에 맞게 차 한잔 또는 커피 한잔을 음미하면서 느껴지는 음악의 감미로움만이 여유로운 생활을 진미를 느낄수 있게 한다.

빠른 템프만으로는 사람들의 기분을 흥분시킬수 있지만 마음 가슴속을 저리게 할 수는 없다.그 당분간 단시기동안의 쾌감, 흥분 그 자체로만으로 끝나기 일수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생의 성공이나 보람은 항상 느리게 찾아 온다. 차분하고 명확한 성찰과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조급증을 소유하지 말고 눈앞에 펼쳐진 느린 템프에 맞춰 잠시라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빠른 것보다 바르게 정확한 방향이 필요하기에.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처럼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어떠한 삶이 궁극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일가?

매일마다 몸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모든 삶의 광경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고 감수하면서 사는 것이 아닐가 고민해본다.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소통할수 있다는 것이, 느낄수 있다는 것이 진정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 아닐가? 소박한 삶의 모든 풍경이 내 몸속에 깊게 스며들수 있다면...

고속도나 초고속 기차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만끽하지 못한다. 고속도로의 인생은 말 타고 꽃 구경하는 인생보다 못하다. 매일같이 고속도를 달리는 사람들은 고속도의 삶에 젖어서 속도를 줄이지 못한채 계속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그들은 고속도의 끝에 필연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을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꿈을 꿀 자유가 있지만 과연 종점에 도착하면 그들이 그렇게 바라던 아름답고 화려한 품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가? 그러나 누구도 그 아름다운 종점을 보장하여 주지는 않는다. 과욕으로 많은 돈을 버는 어려운 방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것인가를 잃고 산것인 아닌가? 현재 우리는 인생을 사는 시간을 배로 늘였지만 그 시간속에서의 행복한 삶의 의미을 부여할줄 아는 여유를 찾는 방법을 상실하고 있지 않은지?

나는 방랑 시인 월리엄 헨리 데이비스이 시에서 그린 그런 삶을 오래전부터 꿈 꾸어왔다. 아직까지 그 꿈을 위해 마음속으로만 나름대로 준비는 마쳤지만 어쩐지 매일같이 손이 닿을듯 코앞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야산 기슭 푸른 풀밭우에 그림같은 한옥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그리고 3~5명 지인들과 이웃되어 싱그러운 풀내음새를 맡으며 풀처럼 자유롭게 자연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생활을 오늘도 다시금 꿈 꿔본다. 


이문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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