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외1수)
김기덕
땅
귀 떨어진 나뭇가지에 소독을 끝내고
작년에 씨 받은 땅의 호흡이 남아있다
아침 일찍 한 해의 밤을 떠나보낸
걱정 깊었던 머리에 새 아침을 염색하고
동이 터오는 나의 땅에
복 많은 꽃씨를 뿌리였다
새해의 덕담을 고려 청자에 주어담고
앞표지에 오랜 꿈을 새겨넣고
우표에 밝아 올 래일의 끝머리에
나는 이 땅의 새 주소를 쓰고 있다
하늘에 길게 써놓은 한줄의 리력서
철새들을 불러놓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는
하루의 표정에 가을이 고개를 숙이고 있네
땀 흘리는 사랑의 그림자 해살처럼 모여들고
볼수록 숲처럼 무성해지는 자랑스러운 언덕
나는 나의 피와 살을 모두 드릴 준비가 되였었다
그리운 풀빛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이 오면
새벽이슬 맺힌 그리움이 반짝입니다
바지가랭이 푹 젖도록 걷고 싶은
풀빛이 생글거리며 반기는 시골의 길
나의 인생은 그 길로 곧추 달려왔습니다
비바람이 세찰수록 더 굳세였던 나날
오직 그 길을 눈으로 그려봅니다
파란만장이 충혈된 눈으로 물들인 날
누군가 그 길로 떠나가서
한번도 돌아온 적이 없는
젊은 시절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잃어버린 세월의 무릎 뼈처럼
바싹 마른 쑥나물로 서있습니다
한창 꿈을 익히던 그때의 풀빛이 그립습니다
운명을 찍은 나의 풀빛이 사랑스럽니다
<미소200g>중 제1부 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