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변경]
업체입주
위챗으로 스캔하기
업체입주
등록
위챗으로 스캔하기
등록하기
포스트  >  좋은 글  >  향기의 정원-기다림의 꽃말
향기의 정원-기다림의 꽃말
2020년08월31일 15:01   조회수:197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수필

기다림의 꽃말

이홍숙

   

 

기다림의 꽃말

 

이홍숙

 

 

언젠가 한국에 일보러 갔다가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카페에 들린 적이 있었다. 작은 정원에는 해바라기가 심겨져 있었고 카페내부의 한쪽에는 생화들로 가득 찬 꽃가게였는데 꽃내음을 맡으면서 들이키는 커피 한잔, 그리고 카페 한켠 비치해놓은 책꽂이에서 빼낸 뒤 안주로 음미하는 한권의 책은 바삐 일상을 보내던 내게 단비와도 같은 선물이었다.

해바라기의 꽃말이 기다림이라고 했던 기억이 뇌리에서 떠올랐었다. 커피 한잔 다 마시고 나면 기다림이 끝난다는 핑계로 그 카페를 종종걸음으로 부랴부랴 나설것이 뻔한 일이기에 나는 커피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조용히 앉아 커피 한잔 들이킬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니 참 그동안 퍽퍽하게 살아온 인생임이 분명해보였다. 한 박자 늦게 반응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대체 어떤 기분일가를 처음 생각해보았다.

그런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하 듯이 딩동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나왔다는 걸 알리는 곰인형이 온몸을 실룩거리며 사명을 다한다. 방금전까지 한박자 늦게 반응하자고 내린 결심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우쳐 주문한 커피를 테이블에 옮겨놓고서야 자리에 다시 앉았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빨리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히고 몸에 배어 자동으로 랜덤 생성을 하는 이유였다.

이처럼 빠른 서비스를 특히 중요시하고 생활 리듬이 빠른 현시대, 사회의 변화발폭에 발 맞추지 않고 한박자 늦게 반응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 되었다.

단계별로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춰 매 한발자국을 내디디고 어쨌든 목표와 계획을 완수하기 위하여 좀이라도 시간절약을 하며 일하는 시간을 늘여보자고 밥 먹는 시간도 줄이고 열심히 뛸 때 에는 자유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한번 실컷 퍼지게 자고 건강 염려없이 배부르게 먹고 집에서 새가 나도록 뒹굴순 없을가 하는 생각은 아마 쉴새없이 다람쥐 채바퀴 돌리 듯 바삐 돌아칠 때 간절한 바램이 아니었을가?

그런 내 솔직한 소망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이번 코로나사태에 우리는 어쩔수없이 격리가 되어 한달 넘어 시간동안 갇혀서 지내게 되었다. 경제위기로 인해 도처에서 아우성이다. 대출을 갚아야 되, 아이들의 생활비 지출에 숨이 막혀, 투자금액까지 회수해야 된다니까, 한달남짓이 장사가 곯으면 임대비와 직원 월급때문에 가게 문을 닫아야 된다니까, 한두달 월급이 없으면 당금 입에 풀칠해야 된다니까, 등등 비명들이 늘어가는 것은 아마도 경제압박에서 그 누구나 자유로울수 없는 우리는 이방인신세이기 때문일 것이다. 2월달 오더가 펑크나게 생겼는데 하고 구시렁거리는 남편의 말에 나 역시도 마음만 자꾸 조급해진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급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 우리 민족음식중 손꼽을 수 있는 김치나 된장 역시도 오랜 기다림끝에야 향수할수 있는 발효음식이다. 우물가에 가서 숭늉달라고 할수는 없지 않을가? 나라 곳곳에서 백의 천사들이 생명을 내걸고 무한으로 지원을 하러 날아간다고 뉴스가 줄창 뜨는 시점, 안타까운 상황에 지지고 볶고 앓음소리를 내다 사나흘이 지나서야 상황을 개변시킬수 없음을 감지하고 아예 마음을 바꿔먹기로 결심을 내렸다. 가만히 있어주는 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했으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갇혀있는 상황에서 해방이 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평소에 못하는 일들을 할수가 있지 않은가? 평소에 미처 엄두를 못냈던 독서와 밀어놓았던 글쓰기를 할 수도 있고 챙기지 못했던 가족도 챙길수 있거니와 가족에게 그동안 연마했던 뛰어난 요리기술을 발휘하여 맛있는 음식들을 해먹일수도 있고 오래동안 대화에 고팠던 식구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동안 수고 했노라고 격려와 칭찬을 해줄수도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기다림에는 이처럼 충분히 그에 따른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격리에 들어가자 그에 맞춰 글쓰기에 열정이 있는 신인 글쟁이들로 번개불이 번쩍 하는 사이 그룹이 무어졌다. 매일마다 작품을 함께 분석하고 의견을 서로 나누고 종합적으로 개괄을 하다보니 그룹 멤버들마다 완성하는 작품수도 부쩍 늘어나서 투고를 한 작품이 발표가 육속 되고 하늘로 치솟는 열기로 인해 그룹 내부는 늘 난로를 피운것처럼 훈훈하다. 나 역시도 그 덕분에 나눔이 가져다주는 희열과 행복을 날마다 충만하게 향수했을뿐만아니라 그동안 밀어놓았던 독서도 알차게 할수 있었고 쉬는 동안 글도 몇편 쓸수가 있었다. 이것 역시 기다림에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뿐만아니라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동안 평소에 전화기에만 매달려 싸움을 하며 대화가 부족했던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있다보니 부쩍 재치있는 “말싸움”으로 관계가 가까워졌다. “유머러스한건 역시 엄마한테서 이어받았다니까요. “ 라고 할 정도로 아들들은 요즘 무척이나 이 분위기를 즐기는 눈치이다. 10년동안 남방에 가 있으면서 한달에 한번 집에 귀가하던 남편도 오랜만에 온가족이 오붓하게 붙어서 생활을 한다며 무척 기뻐했다. 이것 역시 오래동안 고생하며 기다려왔던 덕분이고 예민한 사춘기 부단히 소통을 기하며 꾸준히 견뎌왔던 기다림의 매력이 아니던가?

어렸을 때는 기다림이 무척이나 좋았다. 방학을 기다리는 것은 외가집이나 고모네 집에 놀러갈 수 있고 넓디넓은 들판에서 마음대로 뛰놀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기 때문이였고 개학을 기다릴 땐 오래동안 떨어져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였던거 같다. 설을 기다리는 것 또한 평소에 먹지 못하는 맛있는 음식과 온 가족이 상봉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였던가?

허나 학교를 졸업하고 나와 취직을 하면서부터는 상황은 180도 전변이 되었다. 치열한 생존경쟁중에 몸을 담그다보니 언제 한번 발편잠을 자본 적도, 해야 할 일에 눌리워 제대로 숨을 쉬어본 적도 없었다. 사회생활이란 언제 어디서나 효율을 따져야 했고 빨리빨리를 입버릇처럼 되뇌이다나니 어느새 느긋하게 숨쉴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이토록 가슴이 설레인다는 건 최근에 와서야 다시 깨달은 일이다. 전에는 빨리 반응하고 빨리 말하고 걸음도 뛰다싶이 걷고 뭐든 스피드하게 완성하라고 재촉을 했다면 이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잠잠히 기다릴 줄도 아는 지혜를 발휘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는 기다림,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천천히 느리게 반응하는 기다림,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라는 유머러스한 말이 있듯이 이대로 지갑 열고 입을 닫을려면 이 또한 쉽지 않은 기다림일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나 훈육시키고 싶은 말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걸어온 생애가운데 섭취한 교훈과 경험은 또 얼마나 전수해주고 싶어질까? 하지만 매사람마다 귀가 두개 입이 하나로 태어난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하라는 조물주의 깊은 뜻이 있다고 하니 내 주장을 강하게 어필하기보다 잠잠히 들으면서 상대를 기다려보는 것도 자기말만 맞다고 우기는 “꼰대” 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니 해볼만한 일이렸다.

봄이 오면 “기다림의 미학” 그 카페를 모델로 우리 집 앞마당에 노오란 해바라기를 둬그루 심을 계획이다. 창가에 커피 한잔 들고 서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해바라기를 보며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위로, 그리고 깊은 숙성을 잠잠히 느껴보고 싶다.

김치나 된장이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건강도 맛도 으뜸인 음식으로 발효가 되는 것처럼 쉼과 기다림이 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내 인생에도 기다림이란 브레이크를 달고 향기 그윽한 효소를 넣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맛있게 숙성시켜가고 싶다.

이홍숙.jpg


    



포스트 아이디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소개
청도작가협회
추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