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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설매의 수필-나의 세 고향
2020년08월31일 13:49   조회수:199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수필

나의 세 고향

차설매

   

 

나의 세 고향

 

저는 오늘 청도에 온지 십년만에 산동성청도시에 호적을 올리고 청도주민등록증까지 타서 완전히 산동성 청도시 시민으로 되였어요. 그림 같이 아름다운 도시 청도의 일원으로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위안으로 다가왔지만 근 반세기 넘게 살아온 나의 고향 흑룡강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하고 서운함을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서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준 내 맘속의 고향들이 주마등마냥 나의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군요.

나의 첫번째 고향은 흑룡강성 녕안현 발해진입니다. 옛날 발해왕이 상경룡천부라는 도읍을 이곳에 정하고 당시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둘레 10리에 성뚝을 쌓고 사방에 큰대문을 냈어요.지금도 발해왕터와 남대문, 동대문, 왕이 마시던 우물, 왕이 배를 타고 즐기던 현무호가 그대로 흔적을 남기고 있어요.나의 어머니는 왕의 정기가 흐르는 이곳에서 저에게 생명을 주었고 나의 태줄을 이 신비한 땅에 묻었어요

안개처럼 피여오르는 동년의 꿈 같은 추억은 어느 때부터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가요. 눈같이 희디흰 적삼에 멜끈이 달린 까만 주름치마를 입고 목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걸음도 사뿐히 학교로 다니던 그 골목골목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학교에 가면 자애로운 선생님들이 따스한 손길로 머리를 어루만져주고 꼬마 친구들 반갑게 맞아주었죠. 아담한 교실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것도 좋았지만 휴식시간이면 맘껏 뛰여놀던 그 넓디넓은 운동장이 너무 좋았어요. 신나던 고무줄뛰기며 재미나던 공가돌놀이며 흥이 나는 돌차개며를 놀던 그 장면들이 그림마냥 또렷이 안겨옵니다. 또 겨울이면 학교 뒤 작은 늪의 얼음강판에서 썰매도 타고 목데기 스케이트도 타며 해가 넘어가도 집에 돌아갈 념을 하지 않아 어머니가 찾아와 나와 동생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던 그 부름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초중에 올라가서 처음으로 삼각형의 합동을 배웠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된 주자청의 ”봄“과 로신의 “고향”을 배우면서 나는 커서 무엇을 할가 하는 파릇파릇한 인생의 꿈도 꾸어보았죠. 학교무용대에 들어 곧잘 춤도 추었는 데 도레화장을 곱게 해주던 무용선생님의 다정한 손길이 지금도 아련한 감각으로 다가오네요. 그리고 운동애호가인 내가 운동대회를 하기 전날 비가 오면 래일 운동대회를 못하면 어쩔가 하는 근심때문에 비방울이 튕기는 창문만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공부가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선생님의 지적을 받던 기억도 엊그제 같습니다.

사춘기에 들어서서 이성에 대한 야릇한 새싹들이 오졸오졸 머리를 쳐들 때쯤에는 오늘은 수학을 잘하는 저 남학생이 좋아보이고 며칠 후엔 뽈을 잘 차는 다른 남학생이 좋아보였어요. 그런데 그런 남학생들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건 무슨 원인일가요? 지금은 어디에 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나의 고향 발해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경박호가 있는 곳이예요. 높은 곳에서 흰 물갈기를 날리며 수천수만개의 은구슬로 부서져서 울부짖으며 아래로 내리꼰지는 멋진 경박호폭포- 폭포의 장쾌한 모습과 천지를 진감하는 우람찬 폭포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교단에 올랐고 봄이 되면 온산을 붉게붉게 장식한 진달래꽃향기와 함께 돌틈을 꿰뚫고 청청하게 흐르는 맑은 샘물을 마시면서 청춘의 아름다운 꿈과 미래를 동경하였죠.

장백산폭포의 물줄기가 수원이 된 목단강은 우리 고향의 생명수예요. 목단강은 젖줄기마냥 우리 고향의 넓은 벌을 적셔주면서 비옥한 땅에 만풍년이 들게끔 하여주죠. 100여 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돌이 녹아 몇십리를 흘렀는 데 그 돌우에 쌓인 흙에 심은 벼는 이삭이 탐스럽고 알이 굵으며 밥을 해놓으면 찰밥 처럼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것이 입에 넣으면 진짜 꿀맛처럼 안겨오지요. 목단강을 사이에 둔 향수와 강서입쌀은 지금도 중남해에 수송된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왕의 기운이 감도는 땅에서 아롱다롱 황홀한 동년의 꿈과 희망찬 청춘의 아름다운 꿈이 태동한 사랑하는 나의 고향 발해는 내 인생의 려정에 너무나도 또렷한 잊을 수 없는 성장자욱을 남겨주었어요.

나의 두번째 고향은 흑룡강성 밀산이에요. 문화혁명 후 처음으로 개설한 목단강사범에서 꿈 같이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무작정 남편을 따라 간 곳은 로씨아와 잇닿은 밀산이라는 생소한 곳- 처음엔 이름 그대로 산들이 너무 많아 밀산이라고 이름 지었는가 했더니 웬걸 가도가도 끝이 없는 넓은 새벌이였어요. 산이라고는 저 멀리 가물가물 어렴풋이 안겨오는 완달산맥이 줄기줄기 뻗어있었죠. 내가 자란 고향하고는 너무 다른 점이 많았는 데요. 봄이 되면 한포기 한포기씩 벼모를 꽂고 가을이면 한줌 한줌씩 정성스레 가을을 하는 내 고향 발해와는 달리 물통에 담은 벼종자를 넓은 논배미에 훌훌 뿌리는 것이였어요. 그리고 가을이 되면 커다란 새낫을 휘두르며 벼를 베여눕혔어요. 처음엔 이렇게 농사를 해도 되는가 의심이 들었는 데 이렇게 해도 쌍당 만근을 거둔다는 것이였어요. 알고보니 여기는 태고연한 북대황의 질좋은 비옥한 검은 땅들이 끝없이 무연하게 펼져진 거였어요. 처음엔 밥맛도 우리 고향밥맛보다 많이 못한 것 같았는 데 후에 먹어나니 그 맛도 향기롭고 꿀맛이였어요.

나는 이 신비로운 땅에 삶의 뿌리를 박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어요. 붉은 해살이 대지를 비추는 아침이면 맨앞에는 나의; 남편이 책가방을 멘 큰딸을 자전거에 앉히고 걷고 그 뒤에는 내가 등에다 아기를 업고 한손엔 도시락을 들고 다른 한손엔 교수안을 들고 걷고 그 뒤에는 우리가족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멍멍이가 따르고한폭의 그림 같죠. 이렇게 오고 간 내 고향 밀산의 골목길과 학교의 운동장엔 나의 삶과 나의 정열과 나의 분투의 자욱자욱들이 뚜렷이 찍혀있죠. 처음엔 마음 고운 주인집의 헛간방에 짐을 풀고 새살림을 시작한 때로부터 으리으리한 밀산골간교원 아빠트에 입주하기까지 10여차례 이사짐을 날랐고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원연수학교에 이르기까지 몇십년이란 년륜 속에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울고 웃으며 인민교사의 보람을 뿌듯이 느끼며 살았죠.

하늘 같은 남편을 무작정 따라왔던 이 생소한 땅- 너무 가난하고 너무 바삐 살아서 아름다운 산천도 보이지 않았던 고장, 거의 십년이 지나서야 이곳에 유명한 흥개호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고 개혁개방 후 교원연수학교에 전근되여서 여유가 생겨서야 전국적으로 이름난 담수호인 흥개호에도 유람가 보게 되였어요.

흥개호, 저 멀리 지평선과 끝이 잇닿은 넓디넓은 호수- 흰구름 감도는 푸른 하늘아래 흰 갈매기들이 유유히 날아예고 은빛 파도 넘실거리는 호수우엔 흰돛을 단 고기배들이 자유로이 떠다니고 있네요. 뜨거운 태양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조약돌이며 떡가루 같이 부드러운 백사장이며 저 멀리 유유히 날아예는 수만마리의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며내가 사는 고향 밀산은 실로 아름다운 고장이였어요. 또 흥개호에는 백련어라는 희귀한 물고기를 비롯한 백여종의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어 밀산시민들의 밥상을 풍요롭게 하여주죠. 알고보니 흥개호의 3분지 2는 로씨아에 속했는 데 로씨아 원동지대와 밀산국경에 통상세관이 세워져 명절이 돌아오면 로씨아상인과 유람객들이 줄지어 밀산에 몰려든대요.

개혁개방 후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흥개호는 더욱 아름다운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많고 많은 여행객을 불러오고 있으며 밀산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로 그 이미지를 자랑하고 있어요.

자연이 선사해준 아름다운 흥개호나 무수한 벌들이 모여들어 꿀을 빚어 꿀이 흘러내린다는 봉밀산(蜂蜜山)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옛날부터 밀산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했다고 합니다. 우리민족의 유명한 시인 리상각선생이나 유명한 작곡가 최삼명, 안국민, 고창모 등 분들이 모두 밀산분들이였고 우리 밀산에 와서 항일활동하던 주덕해도 첫부인이 밀산분이였다고 하네요.

그래요. 내 고향 밀산은 산천도 좋지만 사람들이 더 좋아요. 녀성들은 이쁘고 활발하고 또 멋쟁이들이고 남성들은 술 잘 마시고 의협심이 강하고 남자대장부기질을 가지고 있죠. 저는 몇십년을 살면서 이 땅에 정들었고 이 고장 사람들과 떨어질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을 맺었죠. 동년을 제외한 내 삶의 전부가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더우기 나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탄생시켜주고 평생 분투의 피땀이 스며있는 이곳밀산은 나의 가슴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잊을 수 없는 나의 사랑하는 제2의 고향이에요.

나의 3번째 고향은 지금 살고 있는 산동성 청도시에요. 자식들이 사업하는 상해와 가깝고 살기가 좋다고 소문이 나서 무조건 짐을 싸가지고 이곳에 정착하였죠. 와보니 명불허전이 아닌 반세기를 살아온 나의 고향들과는 비길 수 없는 그림 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해변도시였어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이곳은 우선 기후가 좋아 여름이면 너무 덥지 않고 겨울이면 너무 춥지 않아 인류가 거주하기 가장 좋은 도시에 속하고 주위 환경이 아름답고 관광지가 많았어요. 웅위하고 기이한 로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해발고가 높고 일출을 보기 좋은 우리나라 5악중의 하나인 태산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푸른 파도 출렁이는 황해가 있어 전국에서 이름 꼽히는 10대관광도시로 그 위상을 자랑하고 있죠. 더우기 청도 바다는 국제요트경기장으로 지정되였고 2014년에는 청도에서 세계원예박람회가 열리였으며 2018 6월에는 시진핑주석의 주최하에 20여개 국가의 수뇌자회의도 청도에서 열리였어요.

몇십년 전에는 너무 가난하여 관동으로 살 길을 찾아헤매던 이곳 사람들, 지금은 개혁개방의 혜택으로 허허벌판이였던 이곳에 으리으리한 고층건물들이 수풀처럼 일떠섰고 집집마다 아빠트에 번쩍이는 승용차를 가지고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부자로 탈바꿈하였죠.

뿐만 아니라  이곳은 생태환경에 대한 보호와 미화가 얼마나 잘 되였는지 문만 나서면 온갖 록음의 세계가 우리앞에 펼쳐지고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들이 우리를 그림 같은 꽃의 선경 속으로 유혹하지요. 옛날에 그처럼 동경하던 도연명의 도화원이나 꽃도시 광주를 무색하게 하는 이곳, 그리고 배추, 무우, 고구마, 락화생, 감자 등이 너무 잘되고 사과, 배 등 과일도 너무 흔하여 우리 생활을 풍부하고 편리하게 해주는 이곳, 우리는 진짜 인생의 만년에 어쩌면 큰복을 만나 살기 좋은 이 땅에 정착하였을가요. 이렇게 이곳은 자연적으로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고장일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개혁개방 후 많은 한국기업인들이 이곳에 와서 정착하였고 따라서 수많은 조선족들도 이곳에 와서 뿌리를 박기 시작했죠.

그 때로부터 2-30년이 지난 지금엔 한국인과 조선족이 거의 20만이 된다고 하네요. 전국적으로 모여온 우리 조선족 젊은기업가들은 치열한 산업경쟁 속에서 신근하고 억척스러운 분투로 기업기반을 튼튼히 닦아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어요. 그리고 우리 청도엔 흑룡강신문사 산동지사에서 꾸리는 신문도 있고 해안선잡지도 있으며 해안선인터넷신문과 잡지도 있고 경제주간 등 신문도 있어 우리의 문화생활도 풍부히 하여주죠. 뿐만 아니라  기업협회,향우회 , 로인협회, 녀성협회, 교사친목회 등 여러 협회들이 있는 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경력과 취향에 맞는 협회에 참가하여 인생을 풍부히 하고 거기에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과 친목을 다지며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고 인생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어요.

더우기 의미있는 건 이 곳에 와서 나의 두 옛고향사람들과 다시 만났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온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새로운 정으로 서로 보듬으며 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예요.

시간만 되면 녕안 발해의 나의 동년의 친구들과 만나 재미나는 동년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또 다른 시간엔 나의 두번째 고향인 밀산사람들과 만나 재미나는 활동도 하고 여행도 같이 가면서 고향에 대한 회포를 풀기도 하죠. 또 그외 시간엔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은 협회에 들어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사물놀이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고도 충실하게 보내죠. 그러면서 옛고향친구들이나 지금의 새로운 친구들과 서로 사랑하고 관심하면서 우의를 돈독히 하고 소중한 인연을 끈끈히 이어가고 있죠.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어요. 인젠 우리가 청도에 온지도 10년을 넘어 이곳에 정들었고 이 곳의 사람들과 산천을 사랑하게 되였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옛고향사람들과 다시 만났으니 이곳은 틀림없는 나의 사랑하는 세번째 고향으로서 나의 마음 속에 깊이깊이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고향이란 개념은 자신이 태여나 자란 고장이라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고향은 저의 생명과 생활이 오래 동안 머무른 곳, 제 삶의 숨결과 인생력사의 자욱이 찍힌 발해, 밀산, 청도가 모두 소중한 잊을 수 없는 사랑하는 고향이예요. 저는 저의 인생의 불꽃이 다 하는 순간까지 저의 고향들을 맘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영원히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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