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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수필-나의 소원은 통화
2020년08월26일 11:43   조회수:284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수필

나의 소원은 통화

박미향

   

나의 소원은 통화

 

최근 들어 전화벨이 울리면 반가운 마음도 발신번호를 확인하기 전 몇초뿐, 정작 그리운 사람한테서는 안 걸려오고 욕쟁이할머니의 욕마냥 거침없이 쏟아지는 광고전화들을 무심히 꺼버리면서 여간 성가시다고 여긴게 아니였다.

요즘은 수십통의 광고전화가 내 통화기록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초대받지 않은 잔치집에 온 손님처럼 뻘쭘하게 끼여있는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 한켠이 웬지 씁쓸해난다.

광고전화는 대체로 인테리어회사, 부동산, 은행, 학원 등 그 종류도 참 다양하다. 동일한 점이라면 한결같이 그렇게도 열심을 내여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한번 걸어서 안 받으면 두번 세번이라도 서슴치 않는다. 모르는 번호가 뜨면 아예 안 받다가도 자꾸 전화하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받으면 역시나 광고전화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다른 도시에 있는 친한 옛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광고전화에 너무 질린 나는 아예 받을 생각이 없어 몇번 울리는 동안 잠자코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받을 때까지 그칠 줄 모르고 울리는 전화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화면을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가 옛친구의 이름이 화면에 떡하니 떠있었다. 

일년 가야 먼저 전화하는 법이라군 모르던 친구가 전화를 다 주고 무슨 일 있나싶어 깜짝 놀라 얼른 전화를 받고 나서야 나는 친구가 별 일 없이 안부전화를 한 것임을 알았다. 그날 통화를 통해 나는 그 친구가 결혼 2년 차에 마침 바라던 아이를 가진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서 그리운 친구한테서 걸려온 반가운 전화인데 깜짝 놀랐던 걸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픽 나갔다. 정작 반갑지도 않은 광고전화엔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벨이 울리면 광고전화일 것이라는 반사적인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인데 말이다.

전화를 안하기는 타 도시에 사는 사이나 같은 도시에 사는 사이나 마찬가지다. 요즘은 정말 급한 상황이거나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곤 거의 SNS로 문자나 음성으로 주고 받는다. 련락처를 주고 받는 방식도 업그레이드 되였다. 이젠 전화번호를 주고 받기보다 SNS로 친구맺기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척 사이, 가까운 지인들에게 조차 전화를 거는 회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광고회사 직원들은 생판 모르는 남한테 전화 걸면서도 언제 봤다고 “언니”, ”오빠” 불러대며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또 “친절”하게 전화를 건다.

그렇다면 매일같이 열심히 모르는 사람한테 광고전화를 하고 있는 그들은 친척, 지인들한테는 얼마나 자주 전화를 하고 있을가 무척 궁금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얼마전 유치원에 다니는 세살배기 딸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난지 2년이 되여가는 외할아버지한테 전화드리자고 얘기해왔다. 나는 우선 알겠다고 하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외할아버지가 전화를 못받을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왜 못 받을 수 있냐고 되묻는 아이한테 나는 외할아버지가 휴대폰이 없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잠자코 듣고 있던 딸이 “그럼 외할머니 휴대폰을 외할아버지한테 빌려드리면 되지”라며 제법 그럴듯한 방안을 제시해오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속 말이 입밖으로 튀여나왔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구나’

뇌혈관질병을 앓으셨던 아빠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셨다. 그 때문에 나는 아빠의 짓뭉개진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아빠랑 통화하려면 꼭 엄마가 옆에서 “통역”을 해주셔야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질병으로 고생하셨던 그 3년 동안은 자연스레 엄마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아빠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 생각도 안했고 아빠랑 제대로 된 통화를 해본 적도 없었다. 다만 아빠가 호전되여서 시원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날이 오기를 수도 없이 바라고 바랐다.

돌아가시고 난 후 가끔씩 세상에 두고 온 이 딸이 아빠를 보고싶어 할가 염려되여 내 꿈에 찾아와 주시는 아빠는 늘 내게 또박또박 말을 걸어오셨고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았다. 꿈을 꾸면서도 현실세계인 줄로 착각할 정도로 너무 생생했다. 꿈에서나마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셨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부질 없는 생각이지만 그때 왜 아빠 전화로 전화를 안드렸을가 후회가 갈마든다. 아빠한테 전화 드리고 엄마가 “통역”해줘도 되었을 것을 그 때는 왜 미처 생각못했을가. 재직에 계실 땐 밤낮 쉴새없이 울려대던 휴대폰이였는데 병환에 계신 뒤로 아무도 전화를 걸어주지 않았을 쓸쓸한 휴대폰을 보면서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가?

누군가가 물었다. 휴대폰 속에 끝까지 남을 전화번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 땐 누구일가 선뜻 답을 못했는데 이제 그 답을 찾은 것 같다. 다른 번호들은 지워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아빠의 번호는 지우면 영영 지워질 것만 같다. 머리 속에 떠올려 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없다. 전화번호부를 봐야 알 수 있는 아빠의 전화번호, 휴대폰 속에서 마저 사라지면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아 꼭 붙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전화를 드리고 싶어도 더 이상 드릴 수도 없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빠의 목소리도 휴대폰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도 않다.

사람을 보고싶어 하는 마음이 전화를 만들었을 진대 우리는 우리를 보고 싶어 하는, 또 우리가 보고 싶은 이들에게 얼마나 자주 그리운 목소리를 전했던가. 언제까지고 주어질 것만 같은 전화 드릴 기회, 언제든지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리운 목소리, 더이상 광고전화에 파묻히게 하지 말아야 겠다. 광고전화는 반갑지 않지만 그들의 끈기와 열정은 내 마음을 전하는데 꼭 필요한 것 같다.

이제 나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건다. 더이상 광고전화 사이에 끼인 외로운 전화가 아닌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전화 한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박미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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