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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춘옥의 수필-콤플렉스는 개성이다
2020년08월16일 19:19   조회수:183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수필

콤플렉스는 개성이다

한춘옥

   

콤플렉스는 개성이다

우리는 서로 다양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보통 콤플렉스 하면 열등감이 있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정신 분석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진 힘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사회에 관찰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다.

아마 이 세상에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는가 보다. 세계를 창조한 위인들도 콤플렉스의 긍정적인 부분을 집중시켜 전문성을 키웠다고 한다.

나도 어릴때부터 콤플렉스 때문에 부정적인 부분에 많이 치우쳤다. 남들 보다 엄청 많은 별명을 달고 살면서 억울할 때도 많았지만 수정할 수 없는 콤플렉스였다.

이웃집 아주머니까지“너 땅 내려다 볼 때 어지럽지 않냐?”고 물을 정도로 나는 해발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름 세개에 또 전봇대, 콩나물 등 하여튼 셀 수도 없이 별명이 많았다. 참 지금처럼 돈 내고 이름 짓자면 돈을 꽤나 썼을 것이다. 다행이 그 가난했던 세월에 공짜로 받았으니 말이지.

그나마 운동세포라도 있었으면 국가선수 생활이라도 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어서 체육학교 시험에서 미역국을 먹기도 했다. 아무튼 긴 것 만큼이나 행동 역시 굼떠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굼벵이 사촌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들어왔다. 그 세월에는 모델이란 직업이 있는 것 조차 몰랐으니 자원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어디가나 내가 앉고 설 자리는 언제나 맨 뒤였다. 장난치기는 좋지만 공 부하기에는 하등좌석이 분명했다. 친구들이 같이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려 도 언제나 나에게 꾸지람이 집중되었다. 해발이 높으면 산소 부족이라는데 공부까지 못하면 매일 놀리움을 당해야 했다. 키가 작으면 공부를 못하거나 일을 못해도 눈에 나지 않지만 나에게는 핑계댈 이유조차도 차례지지 않았다.

어느 한번 친구와 밖에서 놀다가 밀쳐놓은게 그만 친구가 넘어지면서 생채기가 생겼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어른이 왜 동생같은 애를 밀쳤냐고 화를 버럭 내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우리는 같은 반 친구라고 해석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른한테 또박또박 대꾸질 한다면서 무작정교무 실로 끌고갔다. 결국 억울함은 면했지만 한번 구겨진 자존심은 종내 되찾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일 할 때면 이고 지는 그릇에 항상 남보다 팍팍 더 많이 담아준다. 똑같은 배급으로 쌀을 타서 먹는데 누구의 성장판을 훔쳐온 것도 아닌데 화가 나서 집에 와서는 어머니와 씩씩거릴 때도 많았다.

엄마는 언제나 웃으시면서 산이 높아야 그림자가 크다고 나에게 기를 살려주며 말씀했다. 가끔 동네 사람들에게 물을 팍팍 쳐서 키웠다고 자랑삼아 허드레를 떨기도 했지만 나는 정말로 싫었다.

그 없는 세월에 부표 없으면 천도 못사는데 표면적이 커서 옷감 낭비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그때는 머리에 많이 이고 지면 키가 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실천은 결과가 있을 수 없었다.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만큼 어떤 방법으로도 나의 성장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같이 밀치며 놀고 공부하는 걸 빼고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할 때에는 내 몫이 없다. 항상 연습은 시키고 머리 하나는 더 크다고 나중에 빼버리는 단임 선생님이 너무도 야속했다.

하지만 본능적인 자호감이랄까. 영화관에서 물처럼 밀려나오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까만털 공이 평행 이동하는데 마치도 흐르는 물위를 둥둥 떠내려가는 까마귀떼들 같았다. 어쩌면 똑같은 정수리에 맞춤형 원이 흘러가지. 내가 신기해서 “너희들은 뭐가 보이 니? 까만 공이 굴러가지 않고 흘러간다!”하면 그 장면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애들은 배구공처럼 쳐보고 싶다며 손을 올리 뻗기도 했다.

겨울에 춥다고 하면 표면적이 커서, 다른 사람의 일에 참여를 하면 싱거워서, 일 처리에 삐끗하면 여물지 못해서, 너무 길어서 명은 짧다고, 아무튼 백이면 백가지 다 흠이고 잘못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콤플렉스였으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을려고 매일 기도하면서 소원을 빌었겠는가. 감사하게도 자식은 맞춤형으로 되었으니 해발높이는 나의 세대에서 끝난 셈이다.

만약 내가 해발 높은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전문성을 키웠다면 아마 체육분야를 전공했을 것이다. 그 콩알만한 월급과 철밥통에 만족하면서 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석현에서 평생을 보냈으니 나도 참 긴 것만큼 보수적이라고 하겠다.

언젠가 학생들이 나의 콤플렉스를 부러워하면서 왜 시골에서 자원을 썩히 는가고… 자기네들 같으면 자원을 이용하여 더 큰 무대에 쓰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도리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나의 콤플렉스가 타인에 의해 좌우지 되지 않았다면 그것을 극복은 못했을 망정 적어도 현명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퍽 윤택있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백프로 만족을 하지 못한다. 나는 키 작은 깜직형을 부러워하는데 누구는 키 큰 사람을 부러워하니 사람의 욕심을 하나님인들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

그러니 콤플렉스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료녕신문>> 20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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