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외1수)

김기덕 

정미소

인생의 수많은 눈가림을 벗기여

쌀을 받아내는 정미소가 너무 좋았다

380v 회전으로 물과 흙의 진실을 볼줄 아는

귀여운 생각을 길러내는 쌀이 꿈이였다

행복의 씨앗 같은 쌀알을 눈동자로 보고

가슴에 차곡차곡 쌓을 그리움의 포장을 벗긴

보기만 해도 자랑스런 쌀알이 생이였다

꿈의 껍질을 벗기고 아픔의 껍질을 벗긴

이 세상의 운을 이어가는 사랑의 정미소

나이 오랜 갈망이었다

여름의 가식을 벗기면 가을의 무게가 되고

열망의 옷을 벗기면 희망이 미소짓는

햅쌀이 주는 새 삶의 순수한 정미소가 좋았다

세월의 껍질을 다 벗기여 가자

눈부신 해살과 달빛을 알곡처럼 받아내고

눈물의 껍질을 벗기여

즐거움과 기쁨의 오곡을 받아내는 정미소가 좋지 않느냐

벼

세월을 장난감처럼 딸랑딸랑 울리던

파란 벼모 논에 옮긴지 어제 같은데

농부들의 정성에 하마 꽃을 피우네

작은 혀를 내밀고 7월을 노래하는 벼꽃

남쪽에서 불어오는 신바람을 안고

만석 벌 자르르 기름 흐르게 하는 들

농사짓는 농민들의 이마에

9월의 밝은 표정 벼꽃이 되여 웃네

끝이 어딘지 보이지를 않아도

논마다 기쁨이 소리 찰랑거리고

즐거움 만끽하는 황금전야에

주름을 잡아가는 행복이 넘실거리네

                             <미소200g>중 제5부 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