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가족
류신주
특별한 가족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가족이 있다. 피를 같이 나눈 사이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서 커온 친구 사이도 아니다.
2016년에 나는 청도에 오게 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늘 외국에서 근무했던 나에게 남편만 보고 따라온 청도란 도시는 너무 낯설고 적응이 안되는 곳이였다.
게다가 집에서 어린 딸애를 돌봐야 하다 보니 사회생활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위에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친구 한명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갑자기 내 뇌리를 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거야.)
난 재빠르게 예전부터 내 위쳇에 저장돼있던 그분한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전에 모이자 가족방에서 같이 수다를 떨던 ***(아이디)인데 혹시 저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잘 지내시나요?"
답장이 1초도 안되여 돌아왔다. "그럼요" 한마디를 보는 순간 이름 모를 전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면서 지나갔다.
난 그렇게 온라인수다방에서 안면도 모른 채 실컷 수다를 떨던 사람들과 련락이 닿았고 이어 그들의 위쳇그룹에 초대되고 따라서 나한테는 아주 “특별한 가족”이 생겨나게 되였다. 위쳇그룹 이름도 모이자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하여 “우리는 가족이다, 모이자가족”으로 되여있었다.
이 가족에는 현재 31명의 가족성원들이 있는 데 그 중 어른이 18명, 아이가 13명이다. 한때 온라인상으로 같이 고민거리도 토론하고 남편 흉도 보고 육아상담도 하고 힘들 땐 서로 다독여주던 소위 “아줌마”들의 오붓한 집이다.
이제는 아줌마들 파워로 남편들, 아이들까지 모두 합세해 31명의 가족이 된 것이다. 1년에 두번씩 뻐스를 임대해 전 가족이 여름에는 바다가로, 겨울에는 온천으로 려행을 떠난다.
그 중 창립맴버인 9명 녀자들은 또 따로 소위 “번팅”을 두주일에 한번 꼴은 가진다. 함께 식사하고 커피도 한잔 하면서 아이들 문제로부터 크게는 국가대사까지 아줌마들답게 궁시렁거린다. 한낱 아줌마들 수다에 불과하지만 우리한테는 찌들고 삭막한 외지생활에 톡 쏘는 짜릿함과 시원함을 동반하는 사이다 같은 모임이다.
처음으로 그룹에 초대되였을 때 전혀 스스럼없이 일상을 공유하고 모든 걸 오픈하는 모습에 새삼 놀라기도 하였다. 갑자기 회사 출장이 잡히면 이 흉흉한 세상에 다른 집에 아이를 척척 맡기기도 하고 낚시하러 갔다가 어확을 거두면 몸소 한집한집 물고기배달도 해주고 누군가 저녁반찬거리 고민스럽다고 하면 약속이나 한듯 저녁밥상 사진이 줄줄이 올라왔다.
어떻게 이 정도로 친해질 수 있을가고 갸우뚱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온라인상으로 거의 2년 동안 서로의 생활 속에서 웃고 울고 떠들고 거닐었던 것 같다.
특히 주위에 친척, 친구 한명 없는 나한테는 더욱 가족보다 가족 같은 가족이였다. 남편 출장 중에 애가 아프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련락하기 무섭게 달려와 병원에 호송해주는 가족이였다. 그 가족의 힘에 떠밀려 오늘도 내가 낯선 외지에서 씩씩하게 밝게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가져본다.
타향에서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거의 나와 비슷한 특별한 가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 형제를 떠나서 낯선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어느 정도의 울타리가 필요하고 그 울타리는 같은 경험이나 추억, 같은 시대나 배경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하나하나 세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외지에는 고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향우회나 협회가 특히 많다. 타향에서 생존해나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록록치 않다. 언어장벽에서부터 지방사람들의 터세 갑질까지 이겨나가자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동반한다.
그렇다고 이런 모임에서 술 한잔 기울인다고 삶의 고단함과 어려움이 해결되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공유하고 있는 추억거리를 꺼내 같이 웃고 떠들다보면 저도 모르게 오늘의 고민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래일 또다시 힘차게 뛸 수 있는 엔돌핀이 생겨나는 게 아닐가싶다.
"우리 가족 분들, 오늘도 홧팅하는 하루 됩시다!"
아침부터 띵동 하고 울려대는 우리 모이자가족그룹의 아침인사문자를 동반하며 오늘도 힘찬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