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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의 정원-고독을 씹다
2020년06월25일 17:56   조회수:619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수필

고독을 씹다

이홍숙


고독을 씹다



일년에 한번씩은 아주 지독하게 들러붙는 고독에 몸서리를 치며 짙은 괴로움에 모대길 때가 있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세상이 슬퍼지고 리유가 없이 눈물이 나고 햄스터처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몸을 뒤척이거나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고 커피를 수도 없이 들이키고 고독을 쫓아버리느라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하면서 야단법석을 떤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마다 고독을 쫓아버리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고독해서 술을 마시고 또 어떤 사람은 고독해서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를 찾는다.

평소에 늘 많은 사람을 만나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나는 쉬는 날이 되면 대부분 홀로 조용하게 보내기가 일쑤다. 그래서 뜬금없이 찾아오는 고독 앞에서도 아무런 파문이 없이 잠잠해보이는지도 모른다.

원래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혼자 하루종일 있어도 외롭다거나 소외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나 힘들다는 감각이 전혀 없이 오로지 아무 방해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는 느낌때문에 은근히 즐기는 모드이다.

허나 일년에 한번씩 지독한 고독에 모대길 때는 이 모든 것이 거품으로 사그러진 듯 즐긴다는 느낌보다 홀로라는 그 짙은 회색 아우라로 인해 가슴에 묵직하게 통증이 내려앉고 내 기분은 12층짜리 건물 제일 꼭대기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앉은 듯 다운이 된 양상을 보이군 했다.

맏이라는 부담감과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그 책임, 리더로서 짊어져야 할 스트레스, 한 사회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가다보면 여러가지 스트레스가 몸을 휘감아와 의도하지 않았는데 한없이 나약해질 때가 있다. 연질로 만든 컵처럼 취약해져 손가락으로 살짝 터치만 해도 사정없이 부스러질 것만 같이 방어가 모두 해제한 상태로 말이다.

인간의 내면은 왕왕 한없이 취약하여 고독이 스멀스멀 마음의 언저리에 찾아들기 시작할 때면 평소에 입고 있던 단단한 갑옷들이 한층씩 벗겨지고 매미 날개만큼 투명하고 엷은 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적라라하게 나약한 본성을 드러낸다. 그때마다 몸을 옥죄이는 그 무언가를 모두 벗어버린 듯 해탈감에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무진장 허망해질 때가 있다.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엷은 홑옷을 입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인데 주위에서 너는 든든하잖아 너는 항상 씩씩해, 늘 쾌활해서 보기가 좋아 등 말들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올 때는 자신감 빼면 시체에요 하면서 넉살좋게 밀어부치다가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날은 소낙비가 무작정 쏟아졌으면 하고 내심 기다려진다.

고독에 쩔어 모대기는 날은 이왕이면 비가 오는 날이였으면 무지 좋겠다. 쏟아지는 비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고 있으면 흘러내리는 액체가 눈물이 아니라 비방울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으니까…

고독이 마음에 꽂혀 서글퍼질 때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누군가 노크해줬으면 정말 좋겠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눈빛이 슬퍼보여서 말을 걸어줬노라고 누군가 이야기를 해준다면 아무 수식 필요없이 고스란히 내 상처를 말해줄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에 마음 둘 곳이 없어 슬퍼질 때면 마시는 커피 한잔에 따뜻한 밀크까지 곁들여진다면 참 좋겠다. 그 육신을 감싸오는 따뜻함에 외로움으로 엉성해진 마음의 퍼즐들이 단단하게 조여져 더이상 고독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도록.

그리하여 쉼없이 흐르는 비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액체앞에서도 오래동안 말라붙은 눈물샘을 청소할 시간이 온거라고 상냥하게 자신을 다독이고 싶다.

가끔씩 혼자 있어야 세상의 진실이 보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수 있을뿐더러 생각도 정리하고 글도 쓸 수 있고 또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

쓴맛이 존재하기에 단맛이 더 느껴지고 불행이 있어야만 행복이 더 느껴지는 것처럼 고독이 존재하기에 더욱더 주위를 돌아보고 인생을 되돌아보고 내 마음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수 있었던 건 아닐가?

고독이 있다는 건 나에게 소망이 남아있고 삶이 남아있고 그리움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가슴이 차지 않고 뜨겁다는 걸 의미하기에 쉽진 않지만 나에게 아주 가끔씩 찾아오는 그 고독을 사랑하려고 한다. 그리고 즐길려고 한다.

고독이 찾아올 때는 고루한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마음이 무기력하고 힘이 들 때, 타인의 소리보다 내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올 때, 나를 우울하게 하는 생각이 많아질 때, 그런 때가 바로 고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아닐가 싶다.

고독은 우리 내면을 강하게 만든다. 내면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어봐야 한다.

만약 고독을 얼음사탕처럼 빠드득 빠드득 씹어 먹는다면 어떤 맛일가 무지 궁금해진다. 예측을 해본다면 아마도 겉은 칼날처럼 예리하고 단단하지만 안은 솜사탕처럼 달콤하지 않을가 싶다.

고독에서 뜨거운 소망을 깨닫고 그안에서 나에게 남아있는 삶을 체크하고 또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뜨거운 가슴이 있다는 걸 배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에게 사뿐 다가온 고독 그대를 그대로 살풋이 안아주기로 했다. 고독안에서 문드러져 썩어가는 너절한 인생이 아닌 예고없이 살그머니 다가온 고독안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향긋하게 무르익어가는 가을빛 인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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