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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의 벽소설코너-아버지가 보신다
2020년06월19일 15:50   조회수:209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벽소설

아버지가 보신다

박 일


아버지가 보신다


사람을 웃기는 일이 설죽 여사의 몸에 떨어졌다. 글쎄 아들 몽주가 박 관장을 비롯해 남편 친구 일곱 사람을 모조리 법에다 기소했던 것이다.

박 관장이 걸어온 전화를 받고 설죽 여사는 눈이 5배로 커졌다.

- 몽주냐?

설죽 여사는 핸드폰으로 아들을 불렀다.

- 네가 문화관 박 관장이랑 수리국 최 과장이랑 네 아버지 친구들을 몽땅 법에 걸었다는 말이 정말이냐?

- 예, 어머니!

아들의 대답은 빨래방치 같은 감탄부호였다. 

- 너 정신 있는 놈이냐?

- … …

- 그 기소 당장 취소해라!

- 그건 아니됩니다.

- 너 머리 좋은 애가 갑자기 왜 그래? 혹시 돈이 딸려 그 짓을 한 거냐?

- 허허허

- 허허허? 지금 웃음이 나오냐?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도 네가 한 짓 아시면 마음이 아파하시지 않겠냐?

- 혹시 선친께선 어머니처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개소리 그만 쳐라!

아들 몽주가 앞에 있다면 무섭게 귀쌈을 후려칠 것처럼 설죽 여사는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

전날까지도 현조선족중학교 교단에 서있던 설죽 여사의 남편이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갔다. 비보를 받고 설죽 여사는 머리가 흐트러진 채 한국에서 날아왔고 연구생 공부를 하는 아들 몽주는 황소눈을 해가지고 장춘에서 달려왔다. 명이 그쯤밖에 안되어 가는 사람은 안스럽고 불쌍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후사는 잘 치러졌다. 특히 남편 생전의 딱친구들인 현 문화관의 박 관장, 수리국의 최 과장 등 몇분은 친구를 잃은 아픔에 땅을 치며 우느라고 목이 다 쉬였다.

- 형수님! 이거 정말 죄송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날 저녁 형님은 우리 같이 술 마시고 댁으로 돌아온 뒤 그렇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후사를 치른 뒤에도 남편 친구들은 저녁마다 한번씩 찾아와서는 설죽 여사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군 했다.

- 몽주야, 너도 봤지?! 문화관 삼촌이랑 수리국 큰아버지랑 저 어르신들은 너의 아버지와 아주 사이좋은 친구들이였어. 너의 아버지가 혼자 집에 계신다고 늘 김치며 반찬거리를 가져다주었고 또 서로 앞다투어 당신 집으로 모셔다 좋은 음식을 대접한다고 지난 봄 내가 왔을 적에 자주 외우더구나.

- 그래도 저는 그분들이 그저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 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 선친께선 그분들과 술 마시고 그렇게 된 게 아닙니까?

- 호~ 친구들끼리 기분 좋아 술 마신 거니 그런 일은 너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 저가 누구한테서 들을라니 수리국의 최 과장이란 분은 아버지가 술을 못 마시겠다고 그렇게 사양하는 것도 미련스레 술을 입에다 밀어넣다싶이 강권했다고 합디다.

- 설마 뭐, 그렇게까지야 했겠냐? 그리고 아무리 어떻든 본인의 잘못이 큰거 아니겠냐? 술이 몸에서 받지 않으면 당신이 견결히 나누웠어야 하는 거지, 안 그래?! 됐다 이제 이런 말을 우리 입에선 꺼내지 말자.

설죽 여사는 몽주가 무슨 토를 더 달까봐 뒤말을 뭉청 잘라버렸다.

  그렇게 남편의 후사를 치른 뒤 설죽 여사는 한국으로 다시 나갔고 몽주는 공부하러 장춘으로 떠났다. 그랬던 아들이 언제 다시 고향인 ㄷ현으로 갔었는지 머리에 머리카락이 생겨서는 겪어도 못 본 법놀음을 그 녀석이 기어이 주물러 만들며 사단을 피웠던 것이다.

  얼마 지나자 ㄷ현의 중급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문화관 박 관장이 설죽 여사에게 전했다.

  아들 몽주는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신 박 관장, 최 과장을 비롯한 7명 피고인에게 많지도 적지도 않게 피해보상금 5만 5000원을 요구했었는데(아버지 연세 55세라 한해당 1000원씩 붙여 그런 수자를 만든 것 같음) 법원에서는 사망한 당사자가 성인이기에 완전 자률능력이 있는 만큼 본인이 70%를 책임지고 30%는 같이 술을 마신 7명이 책임지는데 그중 술상을 마련하고 친구들을 불러들인 박 관장이 10%, 사망자의 곁에 앉아 술을 강권한 최 과장이 10%, 그 밖의 10%는 나머지 5명이 공동 부담하기로 하였다.

  - 어머나~ 관장님! 이거 정말 죄송해서 말이 안 나가네요…

  설죽 여사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 머리를 달달 떨었다.

  - 우리 애가 키만 멀쩡히 컸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이 못난 에미가 대신 사과 드린다고 여러분께 전해주세요. 그리구 그 피해보상금은 제가 꼭 도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아닙니다. 형수님! 몽주 덕분에 이번에 우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의 몸에서 앞서가는 세월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우리의 술풍기와 술문화도 많이 고쳐야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죽 여사는 박 관장과 전화통화를 마치자 서둘러 아들 몽주의 핸드폰번호를 꾹꾹 눌렀다.

  이 년석아, 기어이 그래야 속이 풀리겠더냐?

  설죽 여사는 입안에 한사발 그득 문 말을 토해내려고 벼르는데 아들녀석이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얼마쯤 뜸을 들여 다시 쳐봤고 날을 건너 이튿날 또 쳐도 아들 녀석은 그냥 꿩 구워먹은 소식이였다.

  이 녀석, 못할 짓을 하고 나니 절로도 얼굴이 뜨거워 감히 전화도 못 받는 모양인가?

  설죽 여사는 절로도 웃음이 나와 머리를 저었다.

  이튿날 점심 무렵, 설죽 여사의 위챗에 영상 하나가 떴다. 박 관장이 보내온 것이였다.

  화면은 어느 산뜻한 조선족음식점의 단칸방이였는데 물매진 장판구들 위에 박 관장, 최 과장 등 눈에 익은 남편 친구 일곱이 나란히 앉아있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한 젊은이가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 큰아버지, 삼촌들 절을 받으십시오!

  저게 누구야? 우리 몽주 아니야?

  별안간 설죽 여사의 눈은 또 5배로 커졌다.

  - 허허허 형수님! 화면 보셨죠?

  박 관장의 전화다.

  - 오늘 점심 몽주가 우리를 이렇게 음식점으로 청했습니다. 그리고 방금 몽주는 우리가 바친 피해보상금 1만 6500원을 몽땅 수리국 최 과장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최 과장 부인이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것도 어떻게 다 알고…

  그러자 전화가 이번엔 최 과장한테로 넘어갔다.

  - 제수요? 반갑수! 난 딱 한마디만 하겠수… 동생두 제수두 참 훌륭한 아들을 두었구만…

  그 뒤에도 전화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옮겨져 남편 친구 일곱 사람 모두 설죽 여사와 한마디씩 인사를 나누게 되였다.

  그러노라니 설죽 여사는 어느 사이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있는 줄도 몰랐다.

  - 어머니!

  이번엔 아들 몽주의 목소리다.

  - 선친께선 지금도 저를 미워하실까요?

  - 흐흐… 소리 내어 껄껄 웃고 계실 거야!

설죽 여사는 너무 기뻐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연변일보> 2020년 6월 19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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