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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만나는 박일의 벽소설-곡면거울
2021년05월27일 18:02   조회수:284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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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설

곡면거울

박일

 

 곡면거울

                 

 휴일날 아침이다.

 마누라가 차려놓은 밥상에 식구들이 모여 앉았다. 평일 아침이면 출근 하느라, 유치원 가느라 시계를 보며 분주스러울 식구들이 한가하고 여유롭다.

 키가 작아 다리 긴 의자에 공기돌처럼 올라앉은 유리는 밥을 먹다 말고 마주 앉은 이 할아버지에게 눈을 흠뻑 거린다. 그러더니 입안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두 볼이 공처럼 불어나는 흉내를 낸다. “오늘 신세계마트 놀이터로 가자”는 암호다. 그래서 나도 그 암호에 맞춰 입안의 바람을 빼고 두볼이 홀쭉해지는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밥을 먹다 둘이 시방 무슨 귀신놀음 하는 겨?”

 “글쎄 웬 비밀 암호인지 통 보고도 모르겠네요.”

 “할매하구 아빠, 엄만 몰라도 돼요!”

 유리는 시뚝해서 앵두알 같은 입을 비쭉거린다.

 아침상을 물리자 나와 유리는 집을 나섰다. 어린것은 신이나서 앞에서 나비처럼 나풀거렸고 번대머리인 늙은 것은 덩달아 흥이나서 뒤에서 흥얼거렸다. 그렇게 둘은 버스 정류소로 갔다.

 하긴 우리가 사는 동네에도 아이들이 노는 유상 놀이터는 두곳이나 있다. 하지만 중이 고기맛에 반하듯이 버스에 지하철을 갈아타면서도 우리는 신세계마트만 눈에 보였다. 그곳에 가면 중앙 홀 한옆에 평면거울이 아니고 마치도 요술쟁이 같은 곡면거울 두틀이 나란히 세워져있다. 하나는 중심 부위가 볼록 튀여나온 볼록거울이고 다른 하나는 오목하게 들어간 오목거울이다. 그래서 누구던 볼록거울 앞에 서면 단통 몸집은 뚱뚱 하고 두 다리는 잘룩한 난쟁이로 변하고 또 오목거울앞에 서면 어느사이 엿가락처럼 사람을 늘궈놓아 가늘고 긴 꺽다리로 변한다. 그렇게 실제 사람과는 엄청 다르게 과장이 된 기형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까닭에 이 거울 앞에 와서는 소리내여 웃지 않는 사람이 없다.  

 지하철 신세계마트역에 내리니 밖으로 나올 것도 없이 곧바로 마트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곡면거울을 먼저 차지하고 한바탕 웃고 있는 사람들을 기다렸더니 우리 차례가 왔다. 나는 볼록거울앞에 서고 유리는 오목거울앞에 섰다. 순식간에 엉뚱하게 변해버린 자기 모습에 어린것은 배를 안고 팽이처럼 돌아갔고 늙은 것은 고개를 쳐들고 황소처럼 늬물거렸다.

 “할배는 난쟁이!”

 “유리는 꺽다리!”

 “할배는 두꺼비!”

 “유리는 잠자리!”

 “할배는 울보 민기!”

 “유리는 울보 민기의 사촌 누나!”

 “싫어요. 전 민기누나 안할래요.”

 “그럼 누구의 누나 할래?”

 “할배의 누나!”

 “뭐냐? 이 할배의 누나?”

 “아니 아니, 이 거울안에 있는 난쟁이할배 그래요.”

 “핫 하하하....그래?”

 그렇게 우리는 한바탕 즐거웠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는 그곳에서 몸을 왼쪽으로 탈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유리는 놀이터에 이르자 제법 주인행세를 했다. 내가 옆에서 거들어 주지 않아도 절로 신을 벗어 신궤에 얹어놓고 내가 주는 버선을 받아 발에다 척척 신더니 누가 부르기라도 하는듯 안으로 총알처럼 들어간다.

 청소부 아줌마들이 쉴새없이 닦고 있어 유리알처럼 알른거리는 놀이터안에는 퐁퐁, 암벽등반, 미끄럼대, 하며 아이들이 놀기엔 마춤한 시설들이 구전히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유리는 한번 안으로 들어만 가면 놀음에 팔려 나올 생각을 안했다.

 놀이터 밖에는 아이들의 보호자인 젊고 늙은 어른들이 서거나 앉아들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일색으로 꽃밭이고 남자꼬부랑이는 머리농사가 안되여 이마우엔 머리카락이 몇오리밖에 없는 나 혼자뿐이였다.

 그렇게 모두들 자기집 아이가 안에서 뛰노는걸 지켜보고 있을 때였는데 량쪽 귀엔 복숭아 모양의 귀걸이를 걸고 새노란 머리우엔 새까만 선글라스를 꽂은 웬 멋쟁이 여인이 둬살쯤 되여보이는 여자애를 안고 놀이터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제 쉰고개문턱에 택걸이를 했을가 말가 해 보이는 이 멋쟁이는 새빨간 구두는 벗으려고도 하지 않고 발에 신은 그 맵시로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간다.

 (저런?...)

 놀이터밖에 서있던 사람들의 눈이 일시에 커졌다.

 “여봐요. 아이들도 신을 벗고 들어가는데... 그 구두를 벗어요!”

 한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를 친다.

 “허 참, 걱정도 팔자시네. 저의 구두는 바닥이 깨끗하거든요.”

 “깨끗해도 안돼요! 저기 씌여져있는 규장제도를 한번봐요.”

 “전 풍습이 심해서 어디 가도 신은 벗지 못해요.”

 처녀가 아이를 나아도 할소리가 있다고 멋쟁이한텐 신을 신어야 할 리유가 꽤 많은 것 같다.

 “여봐요 청소하는 아줌마?”

 할머니는 이번엔 놀이터안에서 닦개질을 하고 있는 청소부를 부른다.

 “저렇게 구두를 신고 들어가는걸 보고도 가만 놔둬요?”

 “저는 청소만 하지 다른 권리는 없어요.”

 청소부는 기여드는 소리를 한다.

 “그럼 어서 여기 관리인을 불러오던지 해야지요?”

 할머니가 발을 구른다. 그제야 청소부는 어디론가 사람찾으러 떠난다.

 “여러분들도 말 좀 해봐요. 어린애도 아니고 나이도 들만치 든 사람이 저렇게 구두를 신고 저안에 들어가도 돼요? 예?”

 그런데 모두가 벙어리 사촌이다. 서로 눈치만 슬슬 보지 할머니의 말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 이렇게 오줌싸개들만 모였는지... 보다못해 내가 나섰다.    

 “허허 그래유. 여기는 애들이 딩굴며 노는 곳이지유, 가정집으로 비유하면 식구들이 누워 자는 침대 같은 데지유, 그렇다면 깨끗한 침대우에 구두를 신고 올라가도 될가유?”

 여기저기서 입을 싸쥐고 키득 거린다. 저건 또 어떤 사람이냐고 눈도장이라도 찍어놓고 싶었던지 멋쟁이는 고개를 쳐들고 나를 힐끔 흘겨본다.

 이때 청소부를 따라 한 서른살쯤 되여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청소부가 턱짓으로 멋쟁이를 가리켰다. 사람들의 눈길이 일시에 그 젊은이의 몸에 가 멎었다.

 “이모!”

 (뭐, 이모라구?)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모, 무슨 일이죠?”

 “이 사람들이 글쎄 내가 신을 신고 여기 잠깐 들어왔다고 이렇게 난리들이들이 아니냐. 너도 내가 풍습이 심한걸 잘 알지 않냐?!...”

 그러고 보면 멋쟁이는 자기가 이곳 관리인의 이모라는걸 자랑하고 싶어 고의로 연극을 노는 판인가. 나는 어처구니 없어 번대머리만 흔들어 댔다.

 “헤헤... 저분은 저의 이모래요. 요즘 정말 다리가 아프거든요.”

  젊은 녀석이 우리쪽을 바라보며 싱겁게 웃는다. 하지만 그러는 녀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고울리 만무했다.  그러자 일이 기운다 싶었던지 녀석은 신을 벗고 부랴부랴 안으로 들어가더니 멋쟁이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온다.

 “이모, 헤헤- 그래도 이건 아니지요.”

 젊은 녀석은 의자를 하나 들어다 멋쟁이의 엉덩이에 깔아 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래서 도망을 간줄로 알았는데 그런건 아니였다. 조금 지나자 젊은이는 광천수 한상자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는 이사람 저사람 손에 한병씩 쥐여준다. 할머니는 광천수를 받지 않겠다고 이리저리 몸을 탈았지만 결국 젊은이의 뚝힘을 못 이겨 한병 억지로 받아안게 되였다. 

 “고맙네 젊은이, 나한텐 이렇게 꿀물이 따로있네.”

 나는 얼른 려행용 물컵을 꺼내서 높이 쳐들었다. 그래서 나만은 젊은이와 공연히 씨름을 할 일도 생기지 않았다.

 뜻밖에 차려진 광천수 혜택에 팽팽하던 장내 분위기는 사라져갔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가. 별안간 나는 남자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앉아서 오줌누는 여자를 발견하듯 너무나 놀라운 장면이 눈에 띄웠다.

 아니, 구두를 벗으라고 큰 소리를 하던 그 대바른 할머니가 아직도 덜익은 살구처럼 퍼러딩딩해 있는 그 멋쟁이 곁으로 슬슬 다가간다. 그것도 얼굴에 웃음을 잔뜩 바르고...

 “보아하니 이 녀동생은 다리가 정말로 많이 아픈 모양이지?...”

 “아니 그럼 밥먹고 할짓이 없어 거짓말을 하겠어요.”

 멋쟁이는 할머니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미안하네. 난 그런줄도 모르고...”

 (저런? 미안까지 하다고?...)

 나는 이 할머니가 아까 그 할머니가 맞냐 싶어 손으로 눈을 비벼댔다. 보고 또 보아도 사람만은 그사람이였다.

 할머니 태도가 이렇게 물렁죽이 되자 힐끔힐끔 지켜보던 여인들도 하나 둘 멋쟁이 곁으로 모여들었다.

 “신발 바닥이 깨끗하면야 신은 신어도 되는 거지 뭐.”

 “그렇구 말구... 난 여기 올때마다 방금 왔던 관리원이 인상 좋다했는데 이제보니 댁의 조카였네요.”

 이거라구야, 삶아놓은 소대가리도 벌렁벌렁 웃을 일이다. 순간, 번쩍하고 그 멋쟁이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너만은 왜 나한테 와서 굽석거리지 않느냐?”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정말, 불쌍해서 못봐주겠네. 에이! 나이만 잔뜩 처먹은 철부지야!”하는 말을 눈으로 전했다. 

 나는 그런 장소에 그냥 끼여있기가 싫었다. 개미허리끈만한 권세를 알리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멋쟁이도 그렇지만 아부가 마약처럼 인이 박혀 싫어도 핼쭉거리는 주변의 여인들도 눈에 거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슬그머니 그 곳을 떠났다. 그랬지만 안에서 노는 손녀 유리를 지켜봐야 했기에 멀리는 가지 않고 곡면거울이 있는 그 주위에 가서 서섬거렸다.

 지나가던 길손들이 곡면거울을 들여다 보며 왁짝 웃어댔다. 나도 따라 웃었다. 이 거울속의 사람들은 육체가 기형이라면 혹시 저 놀이터에 있는 여성들은 정신이 기형이 아닐가? 문뜩, 웃음을 비집고 이런 생각도 고개를 쳐들었다.   

 “할배- !”

 유리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놀다가 할배가 보이지 않자 찾으러 나온 것 같았다. 유리는 절로 신을 찾아 신고 량손에는 버선이 한짝씩 들려 있었다.

 “할배! 할밴 왕따당하고 여기 쫓겨온 거죠?”

 “왕따? 누가 그래?...”

 나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저기 앉아 있는 이모랑 할매랑 그랬어요.”

 유리가 놀이터쪽을 가리켰다.

 “제가 우리 할배 어디 있는가고 물었더니 ‘너의 할배는 여기에 못있고 저기 쫓겨가 있어’이랬어요. 그리구...”

 “그리구?”

 “할배는 ‘아픈 사람 보고도 도와줄줄 모르는 심술바우’라고 했어요.”

 “뭐야? 어린애한테 무슨 허튼 소리야? 정말 상종못할 인간들이네.”

 순간, 주먹을 쥔 이 늙은 것의 얼굴은 불그락 푸르락 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어린 유리가 두 팔을 한일자로 벌리며 내 앞을 가로 막는다.

 “할배, 저기 가면 안돼요. 우리반 선생님은 싸우는 아이는 나쁜 아이라고 했어요.”

 입술을 옥문 어린것은 결사적으로 나를 못가게 말릴 잡도리다. 

 “그래 알았어, 똥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 피하지!”

 “어허, 녀석! 너 어린게 그런말도 할줄아냐?”

 “할매도 이말  했어요. 할배, 우리 이젠 집에 가요.”

 “좋아! 그럼 지금부터 우린 집으로 향해 시-작!”

 “뽕!뽕-!”

 둘은 동시에 팔을 앞으로 곧추 펴며 기적소리를 냈다.

 우리는 신세계마트를 나왔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 렬차에 올랐다.

 “할배, 할밴 어째서 아픈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어요?”

 유리는 렬차안의 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 바쁘게 나한테 질문을 들이댄다.

 “유리야, 아까 놀이터엔 아픈 사람이 없었어, 어떤 젊은 할매가 구두를 신고 놀이터안으로 들어갔다가 할소리 없으니까 아프다고 한 것뿐이야.”

 “아니요, 전 할배 말 믿지 않을래요.”

 “왜서?...”

 “그럼 어째 할배 혼자만 멀리 쫓겨가 있었어요?”

 “그건 누가 쫓아서 간게 아니구...”

 “할배! 변명 하지 마세요. 저의 눈으로 똑똑히 본것도 있는데요.”

 “네가 뭘 봤지?...”

 “할배가 주먹을 이렇게 떨며 싸우려 가려는걸 제가 말렸잖아요.”

 “아하...”

 “아하! 할밴 어째 그렇게 수양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 중요한 말을 할땐 귀담아 듣기만 해요.”

 “그래그래, 중요한 말 계속 해보거라.”

 “잘못을 저질렀으면 솔찍하게 승인해요.”

 “?... ...”

 “제 말 명심하세요. 그래야 앞으로 할배도 좋은 사람 될수있어요.”

 “뭐냐? 그럼 이 할밴 여태 좋은 사람이 아니였냐?”

 “자꾸 오지오지 캐 묻지 말고 할배 오늘 무슨 잘못 저질렀는가 생각 좀 해봐요.”

 유리는 발끈해서 고개를 홱 돌린다.

 나는 다섯살나는 손녀한테 한바탕 교육을 받고나니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졌다. 아까 나는 멋쟁이 여인을 “나이만 잔뜩 처먹은 철부지”라고 했는데 지금 유리가 나를  신통히 그런 인간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어린것을 앞세우고 거실에 들어서니 주방에 있던 마누라가 쫓아 나왔다. 

 “할매 배고파!”

 유리는 어리광을 부리며 할머니 품에 얼굴을 묻는다.

 “아니, 이 지하 공산당원들은 배를 쫄쫄 굶으며 어데가서 비밀활동을 하다 인제 오는 겨?”

 거실에서 떠드는 소리에 서재에 있던 아들, 며느리도 목을 빼들고 나온다.

 “그래, 밥을 주마, 그런데 우리 유린 그새 또 훌쩍 큰것 같구나.”

 할머니의 말에 갑자기 유리의 눈이 빛난다.

 “할매, 그럼 할배는 키가 작아졌죠? 난쟁이처럼!”

 “난쟁이처럼?...”

 마누라와 아들, 며느리 세 사람이 동시에 눈이 커진다. 그러더니 눈섭춤을 추며 이상한 눈길로 나를 뜯어본다.

 나는 광 치는 번대머리를 상모처럼 돌려댔다.

 “다들 오늘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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