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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금의 수필-세월에 꿈을 싣고
2021년04월27일 15:49   조회수:220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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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세월에 꿈을 싣고

정순금

  


세월에 꿈을 싣고

 

이 강산 락화류수 흐르는 물에

새파란 잔디우에 지은 맹세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길이 고개를 넘자

록음기에서 울려나오는 ‘락화류수’, 오늘따라 유달리 나의 마음을 자극한다. 마음이 처량해지며 어린시절 가슴 아픈 추억이 묻어나온다

봄이 되면 동네 집집마다에서는 지붕에 덮을 벼짚이영을 엮느라고 야단법석댄다. 이웃집 어금이네, 앞집 동식오빠네, 뒤집 남순언니네 마당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총동원하여 일한다. 녀자들이 짚을 섬겨주면 남정들은 부지런히 엮어나간다.

오직 우리집 마당에만 엄마 혼자서 량손에 짚을 섬겨대며 손을 놀리고 있다. 엄마는 이영을 엮어나가다 힘들면 남쪽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노래를 부른다.

‘이 강산 락화류수...’"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 없이 혼자 일하는 엄마가 가엽게 보여 동생과 줄뛰기를 놀다가도 엄마한테로 뛰여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짚을 섬겨주었다.

남정들도 힘들다는 용마루를 엮을 때면 엄마는 전신의 힘을 두 손목에 주며 손아귀에 넘치도록 짚을 량쪽에  섬겨대며 힘겹게 엮어나간다. 그러다 손목이 아픈지 엇바꾸어 손목을 안마하다 또 남쪽을 바라본다.

엄마는 노래를 썩 잘 부른다. 목청이 좋아 동네사람들이 엄마를 꾀꼴새라고 불렀다. 그때 나는 엄마가 부른 노래 가사의 뜻을 잘 몰랐지만 고향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 경남에 계시는 부모형제들을 보고싶어 부른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엄마가 부른 ‘락화류수’, ‘그리운 내 님이여’  이 두 곡을 지금도 언제 어디서나 듣기만 하면 어쩐지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어제와 엄마의 파란만장한 삶이 너무나 차분히 슴배인 노래 같아서 기분이 착찹해진다.

우리엄마는 언변이 좋아 옛날 이야기를 곧잘 한다. 철따라 고향의 벗꽃 필 때의 봄날이야기, 여름에는 보리고개이야기, 가을에는 고향집 마당 한가운 데의 감나무에 깃든 이야기, 겨울에는 화로불에 밤 구워 먹던 이야기, 그리고 대들보 우에 얹힌 꽂감을 훔쳐 먹다 할머니에게  들켜 신발짝에 엉덩이를 맞았던 이야기들이 줄쳐서 엄마의 입에서 나왔다. 그중에도 가을의 추억이 더 많았다.

소학교 4학년에 다닐 때 가을의 어느날이라고 기억된다. 현성에 살고 있는 큰 언니가 놀러왔다. 언니는 부뚜막에 놓인 팔뚝만큼 큰 청무우 세개와 붉은줄이 쭉쭉 간 커다란 떡호박 세개를 보고 깜짝 놀라며 함성을 질렀다.

"야, 우리 엄마 농사 잘 지었네."

그때 엄마는 시무룩해 있다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다가 버럭 짜쯩을 내는 것이였다.

"이게 무슨 농사야? 내가 경남 하동에 살았다면 떡호박 한수레는 걷어들였지. 호박은 얼마나 달고 하동의 청무우는 배처럼 사각사각 맛이 얼마나 좋다고. 고구마는 또 밤은...."

엄마는 말하다 목이 꺽 메어 뒤말을 잇지 못했다.

"언제 경남 하동으로 돌아가 살아 볼란지…"

엄마는 긴 한숨을 쉬고 나서 또 남쪽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큰언니가 다가가 엄마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엄마, 세월이 흐르다 나면 언젠가는 길이 열리겠지요.고향꿈을 세월에 맡겨요."

"그래, 살다 나면 그날이  오겠지 "

엄마는 눈물을 닦으며 또 긴 한숨을 내쉬였다.

정녕 그날이 돌아왔다. 세월은 흘러흘러 엄마의 꿈은 드디여 실현되였다.

1986년 봄에 나는 KBS방송국에 친척 찾는 편지 한통을 보냈다. 뜻밖에 한달도 안되여 우린 삼촌 두분을 찾았다.

큰삼촌은 편지를 받아본 후 엄마와 오빠를 초청했다. 엄마는 장장 40여 년만에 고향인 경남 하동땅를 밟게 되였다. 고향의 모든 혈육들을 다 만나보게 되였다.

그 이듬해 삼촌 두분은 선후로 우리 오남매를 초청하여 고국의 이곳저곳을 모두 유람시켰다. 아버지 없이 불쌍히 자란 조카들과 자주 만나자고 삼촌네는 우리 오남매를 두세번씩 초청하여 일감도 찾아주었고 큰언니를 호적에도 올려주었다.

엄마는 고향땅을 방문하고 중국으로 귀국하여 큰 오빠네와 함께 행복하게 보내시다가 100세 생일을 쉬고 저 세상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흘러흘러 떠나간 엄마는 나무잎처럼 떨어지고 흙이 되고 거름이 되였지만 내 가슴 속에 자리잡은 엄마의 꿈은 항상 희망으로 따뜻한 정으로 남아있다.

아, 추억을 고스란히 안겨주었던 엄마 고향 -엄마꿈

감구지회로 내 가슴에 눈물 젖어드는 오늘 이 시각, 내가 처음으로 큰삼네에 집에 들어선 1988년 설날 밤  한국의 친척들이 다 모인 환영모임에서 엄마가 부른 ‘락화류수’가 지금도 내 귀에 새삼스레 쟁쟁히 들려온다.

이 강산 락화류수 흐르는 물에…

정순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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