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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만나는 박일의 벽소설-털보
2021년04월22일 11:15   조회수:208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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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설

털보

박일

 

털보

 

수림이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강변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한국에 나가 있는 집사람한테 전화를 했다. 다른 할 말은 별로 없어 입버릇이 되어 온 “항상 몸을 주의해서 쉬며 쉬며 일하게”를 되풀이 했다.

내가 전화통화를 마치고 귀에 댔던 핸드폰을 내리는데 누군가 굵고 털이 난 터럭손으로 나의 어깨를 툭 내리쳤다.

“허허, 잘 지냈어?”

“어?... 누구던가?”

얼굴에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웬 털보가 나를 보고 반갑다고 늬물늬물 웃는다. 허물없이 어깨를 툭툭 치는데다 단통 우리 말로 대화를 하는걸 보면 분명 나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디서 본 사람이던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옛날 고향사람? 아니면 내가 위생검사를 다니면서 만났던 어느 식당 주인?...

내가 머리에서 튀여 나오는 물음부호들을 재빨리 식별하며 가려내고 있는데 털보는 정자에 가서 앉아 이야기 하자며 무작정 나의 팔을 끌어당긴다. 보아하니 나를 알아도 이만저만 잘 아는 사람이 아니였다.

“담배 있으면 한대 줘!”

“난 담배 끊은지 몇해 되는데...”

“글쎄, 옛날엔 담배를 무지무지 피웠지? 그지?!...그런데 어쩌나, 난 다리가 불편하거든, 저기 저 노친 얼음과자도 팔고 담배도 파는데...”

그 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 심부름을 떠났다. 확실히 방금 정자로 걸어가면서 볼라니 털보는 한쪽 다리를 절룩거렸다. 그것보다도 털보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상대가 누군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죄책감에 얼른 그런 일이라도 해주라고 머리가 몸을 떠 밀었던 것이다.

“후- 담배맛 좋다!”

털보가 입안에서 담배연기를 길게 내 뿜는걸 보면서 “미안하지만 어디에 사는 누구던가?”하는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털이 부스스한 터럭손이 툭 하고 내 어깨를 또 친다.

“자넨 그래 아직도 그 일을 하는가?”

“내야 의과대학에서 배운게 방역이니 퇴직할때까지 방역참이지 어디 다른데 갈데있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도 비슷한 것 같아 그가 반말을 하니 나도 반말이 나갔다.

“허허, 자넨 큰 도둑은 아니지만 좀도둑이네. 자네가 위생이 불합격인 식당을 돌아다니며 돈을 받아 챙기는걸 내가 손금보듯 다 알고 있네. ”

“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화뜰 놀라 총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털보가 도대체 누구야? 이 털보가 그럼 내 관할구역의 어느 식당집 주인인가? 이런 털보를 본 기억은 없는데...아니면 어느 식당집 주인의 친척? 그러면 또 어쨌단 말인가. 남들은 회뢰금을 숱해 받고 공가자금을 숱해 탐오해도 별탈없이 잘들 지내는데 까짓 눈을 감아주고 돈 몇푼 얻어가지는게 뭐가 겁이 나서 벌벌 떤단말인가. 고래무리에 비하면 내야 작고 작은 새우지... 아니야 몇푼도 법을 어기는 일이여서 누가 알면 큰일 나는건 마찬가지야... 나는 갑자기 간이 콩알만해졌다. 그러는데 털보가 앉아있는 맵시로 나의 팔을 쥐여당겼다.

“여기 앉게, 왜 그렇게 겁이나 쩔쩔 매는가? 내가 고자질할 사람이면 언녕 벌써 했지, 자네를 지금까지 가만 놔뒀겠어? 그건 그렇고 자네 한국에 나간 와이프한텐 너무 허위적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나는 바짝 신경이 예민해졌다.

“‘항상 몸을 주의해서 쉬며 쉬며 일하게’ 속에도 없는 이런 소린 왜 자꾸 줴치는가 말이야?”

털보는 이번엔 정색해서 나를 쏘아본다.

“자네 돈이 없어 와이프를 한국 보냈는가? 와이프를 멀리 보내놓고 나쁜짓 하려고 그런 거지, 그지?! 내 자네 그 더러운 심보를 모를줄 알아? 내 정말 여기서 다 까밝힐가?”

눈알을 부라리는 털보는 갑자기 얼음장처럼 쌀쌀하고 차겁다.

아니, 이 사람이 그럼 정말 내가 젊은 애인을 하나 두고 있다는 것을 안단말인가?

“자네 도대체 누군가?”

내가 더는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를 꽥 쳤다.

“내가 누군가는 당신의 와이프가 잘 아네.”

털보도 눈을 딱 바릅뜨고 나 못지 않게 고함을 지른다.

문뜩, 집사람이 대학다닐 때 십여명 조선족학생들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 귀밑에 구레나룻이 더부룩하게 난 한 사내를 본 기억이 났다.

“자네 그럼 혹시 내 집사람이 다닌 북방사대를 졸업했나?”

“그래 졸업했다 인제 알았어? 하하하 그런데 자네 와이프 하고 대학때 연애를 한건 아직도 모르지?”

“뭐야? 내 집사람하고 연애도 했다구? 자네가?...”

“못난 자식, 연애뿐인줄 알어? 자네 와이프하고 동거도 했어, 그래서 올챙이처럼 배가 불룩하게 임신도 시켰거든.”

“이 망할 자식 어디서 허튼 소리야?”

순간, 화약에 불이 당긴것처럼 분통이 폭발한 나는 두손으로 털보의 멱살을 꽉 움켜 쥐였다.

“하하하, 믿지 못하겠으면 당장 와이프한테 전화를 걸어봐.”

털보는 하늘을 향해 턱을 쳐들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바로 이때 흰 위생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정자쪽으로 우르르 달려왔다.

“아이구 여기 있었네... 미안해요. 딸이 아버지 보러온다고 해서 새옷 한벌 사 입히러 나왔다가 그만 잊어버렸거든요.”

털보는 정신병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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