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변경]
업체입주
위챗으로 스캔하기
업체입주
등록
위챗으로 스캔하기
등록하기
포스트  >  좋은 글  >  향기의 정원-신조어의 멋
향기의 정원-신조어의 멋
2021년04월13일 10:51   조회수:429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ZOA Post Icon-02.pngZOA Post Icon-03.pngZOA Post Icon-04.pngZOA Post Icon-06.pngZOA Post Icon-05.png

   

수필

신조어의 멋

이홍숙

 

신조어의 멋


 

네이버 검색창에 신조어라는 세글자를 쳐넣고 검색을 해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말이나 기존에 있던 말이라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말로, '신어' 라고도 칭한다”라고 해석이 나와있다.

아마 글로 소통을 기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좀 더 풍부해서 새롭게 조합이 된 신조어에 흥미를 갖고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나 역시도 그렇다. 특히나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드라마나 오락프로를 즐겨보다보니 아주 쉽게 신조어를 접하게 되고 그중에서도 웃프다(웃기고도 슬프다)라는 단어나 가즈아(가자를 길게 발음한 것)라는 단어는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2020년에 들어선지 고작 한달 좀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새로운 신조어 탄생을 예고하는 단어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시대의 발폭에 맞춰 언어 또한 신속하게 달라지고 발전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반모(반말모드),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포함한 여러 단어들이 요즘세대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걸 보면 아래세대와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중국어로나 한국어로나 신조어 장악은 필수로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 품 안에서 심심찮게 애교를 부리던 아들 둘이가 올해에 들어서면서부터 순식간에 내겐 “사촌”이 되어버렸다. 이웃도 사촌이라는데 하물며 내가 낳은 애들이 사촌이 되어버리다니? 그야말로 억이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였다.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라고 주위에서 실컷 놀리는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초중에 입학하면서부터 사춘기에 진입해 혼자 방에 들어가 조용히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며 전처럼 우리와 사근사근하게 토론을 하고 대화 하기를 꺼려하는 눈치라 은근히 서운해졌다. 더 어이가 없는건 말이 반이나 줄어버린데다가 일년이란 짧은 기간동안 키도 전에 비해 십몇센티나 훌쩍 커버리고 덩치도 우람져 가끔씩은 그냥 어쩌다 우리집에 놀러온 손님이 아닌가 느껴질 때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태여나면 1촌, 대학가면 4촌이라는데 요즘은 때이르게 사춘기가 찾아와 일명 “중2병”을 심하게 앓는다고 교육프로그램이나 독서회그룹에서 모두들 입을 모으고 있으니 그 사춘기 아들들을 거느리고 있는 나 역시도 팽팽하게 긴장이 되여 있었다. 평소에 교육서적도 부지런히 찾아보고 심리학쪽으로도 줄창 공부를 하면서 단단히 준비는 해왔지만 참 기이한 건 리론이 실천과 부딪힐 때는 하고 많은 보석같은 지식을 알고 있음에도 인내심이 바닥나버리고 만다는 사실이였다.

사춘기의 제일 큰 변화라 꼽자면 전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스키장이든 영화관이든 어디든 다녀오자고 자주 졸라대던 아들들이 사춘기에 들어서자 부모가 귀찮다는 듯 주말에는 무조건 홀로 즐기는 모드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각자 휴대폰으로 관람을 했고 쉬는 날에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농구를 치며 시간을 보냈을뿐만아니라 형제들 둘이서 행여라도 우리한테 알리기 싫은 비밀대화를 할 때에는 영어나 요즘 애들의 신조어로 얼버무렸다. 그렇게 자연스레 우리를 멀리하는 모습을 눈박아 보며 저도 몰래 오뉴월 고추처럼 자꾸 바짝바짝 약만 오르고 있던 중이였다.

내가 서운해하는 걸 눈치챘는지 어느 하루 남편은 내게 이젠 애들한테 더이상 “사랑구걸”을 하지 말고 둘만의 시간을 즐기자며 슬쩍 건의를 했다. 그래 그러지뭐. 나 아직 젊었어. 나는 뭐 너희 아빠랑 단독으로 데이트 하고 싶지 않은 줄 알어? 나도 너희가 천촉짜리 전구알처럼 우리사이 어정쩡 끼여 있는 게 싫었거든. 나 이제 통통 튕길거야, 두고봐. 이 녀석들아. 겉으로 내색은 못내도 속으로 몇고패를 구시렁대고 나니 그나마 서운했던 마음이 봄눈처럼 얼마간 녹는 듯한 느낌이였다.

하여 그날에는 나도 이 녀석들 약 좀 올려보자는 심산에서 애둘에게 그 흔한 데이트 신청도 하지 않은 채 도도하게 남편이랑 단둘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까지 후식으로 먹으며 간만에 좋은 휴식시간을 보냈다. 참 오랜만에 얼싸좋다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집에 돌아갈때는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아들둘은 잠도 자지 않고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야 발견을 했는데 좋은 휴식시간을 보내면서 위챗 모멘트에 업뎃했던 사진밑에 우리 아들들이 심은 플이 몹시 가관이라는 것이였다.

개밥 좀 뿌리지 마요.”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하나도 애 안탐요.”

이런 앙큼한 녀석들을 보았나. 애 타지 않는다는 건 알겠는데 개밥 뿌리지 말라는 건 또 뭥미(무슨 의미)? 요즘세대 신조어라는 걸 눈치는 챘으나 대체 뭔말인지 알수가 없고 애들한테 직접 물어보자니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약올릴 게 분명했다. 차라리 인터넷에서 그 해답을 찾는게 명지해보여 결국은 검색창에 그 신조어를 두드려보았다.

웬걸 “개밥을 뿌리다.(撒狗粮)” 이란 단어를 검색해보았더니 애정을 과시하다는 단어로 떴다. 원래는 그런 의미였군. 그래서 그 뒤에 얼레리 꼴레리가 따라나왔군. 둘을 빼고 단둘이 데이트를 하니 우리집 “사촌”들이 별로 썩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다. 좀 소외감을 느끼는 듯한 표현인가? 그럼 한수 더 떠야겠지?

승리의 미소가 스물스물 피여오르는 걸 간신히 억제하며 한번 더 크게 눈을 부라리며 엄숙하게 못을 박았다.

이후부터 아빠랑 엄마는 너희가 가기 싫으면 억지로 끌지 않기로 했어. 평양감사도 제가 싫으면 그만이라고, 싫다는데 굳이 싫다는 사람들 부를 필요 없잖아.”

뭐 그러시든지요. 그래도 撒狗粮 개 밥 뿌리는건 좀 너무했어요.”

그러니까요. ‘사촌’들 앞에서 그건 좀 부끄러운 일이예요.”

평소에 내가 불렀던 “사촌”이란 단어를 운운하며 녀석들이 피씩 입꼬리를 치켜올린다.

뭐 남이야 애정을 과시하든 말든 그냥 모른척 하세요.”

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아들 둘이 눈이 휘둥그래서 연신 박수를 쳐댔다.

오우, 우리 엄마 요즘 개밥이 뭔지도 다 아셔. 통하는 게 있다니까. 근데 어떻게 알았지? 신기한데.”

이것들이 머리가 커졌다고 이젠 엄마를 놀려먹을려고 해. 먼지 나게 맞아볼래?”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별 달갑지 않는 듯 시뜻해하던 애들이 갑자기 집안이 떠나갈 듯 웃어제꼈다.

먼지 나게 맞아볼래, 이 말 너무 웃겨. 아 나 배아퍼. ‘사촌’에게 이런 단어를 쓰는건 정말 우리엄마만 할수 있는거야.”

애들이 흥미진진해서 야단법석을 떠는 걸 참 오랜만에 본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 그러고보니 나는 참 오래동안 잊고 있었던거 같다. 신조어가 이런 큰 매력이 있다는 걸. 먹고 살기 위해 몸을 불사르느라 온 가족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수 있는 그 신조어들을 쉽게 잊어버리다니…

년년생이다싶이 태어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엄마는 참 많은 고생을 했다. 큰애가 울면 작은 애도 따라서 울었고 소화기계통이나 비뇨기계통의 리듬 또한 얼마나 흡사한지 눈 코 뜰새없이 바삐 돌아도 손발이 부족할 정도였다. 게다가 쌍둥이처럼 키웠으니까 질투가 심해 화가 나면 서로 몸싸움을 하다가 물기가 일쑤였다. 애들의 몸싸움은 학교 갈 때까지 쭈욱 이어졌는데 어떤 날에는 작은 애가 큰애의 귀를 물고 악을 쓰고 거기에 질세라 큰애는 작은 애의 발가락을 물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가훈 비슷한 신조어가 탄생이 되기도 했었다.

누워서 먹으면 소 되. 혼자 먹으면 돼지 되. 서로 물면 이빨 빼.”

몸싸움을 저지시키기 어려울 때면 매번 엄마는 가훈처럼 그 구절들을 읊조렸고 그 때마다 애들이 기겁을 했다. 아수라장이 되버린 현장도 경찰이 다녀간 듯 가쯘하게 정리가 되였다. 이대로 하지 않으면 진짜 소처럼 음메하라고 시키기도 하고 돼지가 돼버렸다며 우리에 가둔다고 놀림을 당하거나 실제로 뺀지를 대령하여 이빨을 빼는 척 하는 벌이 내려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였다. 그러면서 엄마와 나는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그 신조어는 아마도 그 당시 고되고 지친 일상중에 유일하게 우리들이 향수했던 최고의 활력소였을것이다.

또한 많은 신조어중 인상이 깊은 걸 떠올려 본다면 그중 한가지 우리 아이들이 배가 많이 고플 때나 앓을 때 엄마가 해주는 특별식 “계란퐁당국수”를 꼽을수 있다. 말 그대로 기름을 살짝 두르고 송송 썰어놓은 파와 야채를 넣어서 볶다가 육수를 만들고 거기에 국수를 넣고 난 뒤 계란 하나를 퐁당 빠뜨려 삶아낸 국수였다. 애들이 잊지 않고 힘들 때마다 그 국수를 찾는 것도 아마 그 국수만큼이나 “계란퐁당국수” 라는 신조어에 할머니의 사랑이 꼴똑 담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어릴때부터 아이들에게 습관적으로 해왔던 말이라 우리는 느끼지 못했지만 놀러오는 친구들마다 터프하면서도 너무 웃기는 단어조합이라며 배꼽을 잡는 걸 보면 특이한 단어조합임이 분명하다. 먼지나게 맞아볼래, 장작 패 듯이 패버릴거야. 증오의 평방, 행복의 립방, 대충 생겼다. 등등 이외에도 우리집에는 개개인이 나름대로 새롭게 조합한 단어와 구절들이 있다.

특히 사춘기에 진입하면서 애들과 대화가 고플 때 잘 다가서지 못할 때 이런식의 신조어는 충분히 마음을 열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그만이라고 했으니 어떤 방식으로나 아래세대와 소통을 잘 할수 있다는게 진정 복받는 일이 아닐까?

그런 방식을 찾아가다보니 예전에는 새침하고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나도 모르는 사이 쾌활하면서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가 되있었다. 애들 역시도 자신들과 적극적인 대화에 나선다는 것을 많이 반기는 눈치다. 눈빛으로 기선제압하지 않으면 평생 “여왕”이 아니라 “노비”로 살아가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권위위주의 교육방식을 고집하는것 보다는 요즘 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여 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다정한 “멘토”가 되가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신조어에 대해서 왜 아름답고 소박한 우리 언어를 굳이 신조어로 줄여서 써야 되냐고 많이 질책하는 분위기도 없진 않지만 내가 이해한 신조어는 소통과 배려 그리고 친근함 그 자체이다. 사춘기로 인해 불통이 되였을 때 애들이 한 말 한마디에도 귀를 기울여서 그들의 마음을 알고 또 맞춤하게 조언을 하고 성장에 도움을 줄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조어가 내는 멋과 매력이 아닐가 싶은 생각이다.

요즘은 신조어로 인해 아들들과 더한층 다가갈수가 있었다. “우리 엄마는 왜 엄숙하지 못하고 친구같지?” 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마음속 이야기를 곧 잘 털어놓는 우리 아이들이다. 그때마다 주위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을 하며 이젠 다 컸다고 주장을 하는 아들들에게 나만의 소통방식을 적용했던 게 참 보람있게 느껴진다.

새로운 것을 무조건 경계하고 배척을 하기보다는 소통을 목적으로 한 유리한 수단으로 사용을 한다면 새로운 것도 그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을것이다. 어느 분야든 무론하고 발빠르게 변화해가는 이 세상에서 무턱대고 어험하며 뒤짐을 지고 고유적인 걸 버리고 왜 자꾸 새로운 것을 고집하냐며 요즘 세대들을 뭐라 하기 보다 네가 말한 것이 이런 뜻이였구나 나도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아. 공감이야. 그러고보니 네가 한 말이 훨씬 리해하기 쉬운데, 내가 귀담아 들어주마 하는 자세가 진정 성숙되고 멋지고 완전한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신조어의 그 멋, 그 진정한 매력을 음미하며 재치있게 사용을 할 것이고 또 버전을 부단히 새롭게 업그레이드 할 예정이다. 소통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홍숙.jpg


포스트 아이디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소개
청도작가협회
추천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