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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호의 그 옛날 그 이야기-애숭이 처녀,순수한 시대의 그리움
2021년04월12일 11:18   조회수:773   출처:청도조선족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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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애숭이 처녀,

순수한 시대의 그리움

임동호

 

 애숭이 처녀, 순수한 시대의 그리움


내가 고중을 졸업한 이듬해 우리 대대에도 지식청년들이 하향해서 집체호가 생겼는데 모두 우리 생산대에 분배받았다. 그때는 하향한 청년들만 ‘지식청년’이라 다정하게 불렀고 나 같이 귀향한 청년들은 사회적으로 이름도 없었다.

나는 지식청년들을 많이 동정해 주었다. 이유란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낯선 곳에 와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적응하려 노력하는 그들이 돋보였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애티 나는 처녀애가 유달리 나의 마음속에서 맴돌아 쳤다. 그 처녀애는 실오리처럼 가늘 해 3, 4급 바람에도 날려 갈듯싶었다. 얼핏 보기엔 덩치 큰 소학생으로 착각하기 쉬울 정도였다.

언젠가 한 번 어머니에게 닭곰을 부탁해서 그를 우리 집으로 초대 한 적도 있었다. 닭곰으로 그의 몸을 춰 세워 보려는 심사였다. 어머니는 걔는 너무 약해서 나의 대상감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너무 애처로워 그럴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항상 책을 많이 읽으라며 내가 보던 도서들을 빌려주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시험을 보고 대학 간 것이 아니라 사원들이 추천하여 대학에 보내는 세월이어서 지식청년들은 책 읽기보다 자신의 형상에 신경을 썼으며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지식청년들 중 일부는 매일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는 좋은 일 찾아 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때론 되려 일거리를 만들어 놓아 웃음거리 아닌 웃음거리를 만들 때도 있었다.

비록 집체 농사 였지만 모내기와 벼가을 만은 도급(包工) 식으로 했다.

모내기 철에는 그 애숭이 처녀가 내가 운전하는 이양기 뒤에 앉아 볏모를 섬겨 주는 일을 했기에 너무 힘들게 일하지는 않았다. 농촌치고 1년 중 제일 힘든 것이 벼 가을이었다. 생산대 에서는 각 논뙈기 마다 품을 정하고 제비 놀음으로 면적을 도맡게 했다. 그때는 된서리를 맞아야 벼 가을을 시작했다. 기본상 추석을 기준으로 했다. 조금이라도 더 통통 여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된서리만 내리면 모두들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 들고 논으로 향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하한 서리를 맞은 벼를 베자면 손이 시려도 참고 견뎌야 했다.

남들은 절반 남았소, 이틀이면 끝날 거요. 했지만 마을을 드나드는 길옆 논에 가을을 맡은 애숭이 처녀는 매일 오가며 봐도 축이 나지 않았다. 몸이 남들보다 허약한 것이 까닭이었다. 나는 엄청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열다섯 명의 청년들을 이끌고 달빛을 빌어 네시간 정도 애숭이 처녀가 맡은 벼 가을을 해 주고는 닭을 잡아 술대접을 했다. 이튿날에도 역시.

그땐 그래도 혈기 왕성 할 때 여서 힘든 줄 몰랐다. 일부로 5, 6푼 쯤 되는 면적을 남겨 놓았지만 그는 남들보다 벼 가을을 일찍 끝내지 못했다. 결국 또 남들의 도움으로 그의 벼 가을이 끝나는 날 애숭이 처녀는 목 놓아 울었다고 했다.

그 일로 나와 그 애숭이 처녀는 좋은 사이로 번져가 나더러 오빠라 부르겠다 했다.

그래서 나에겐 의매(干妹妹)가 생겼다. 뒤에선 나와 애숭이 처녀가 좋아한다고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아닌 것은 어디 까지나 아니었다. 그가 귀성(歸城) 후에도 명절 때면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와 우리 집 식구들의 안부를 전했다.

귀성 3년 뒤 애숭이 처녀도 나의 결혼식에 참석했댔는데 모 행정 기관에서 회계로 있다는 그가 몸집도 많이 풍만해 졌고 키도 얼마나 컸는지 마을 사람들은 전혀 알아 보지 못했다. 그때에도 애숭이 처녀는 눈물 콧물 짜내며 동네 사람들의 신세를 평생 잊지 않겠다고 했다.

한국 나들이 후부터 지금까지 연략이 두절된 형편이지만 지금도 항상 잘 될 거라고 응원하는 편이다.

어디에 있던 소식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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