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외1수)
강희선
계단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눈앞에 아득히 펼쳐져있다
한참 올라가다
뒤돌아보니
내려갈 계단은 잘리워서
허공에 둥둥 뜬 몸체
현기증에 휘청이며
다시 우로 옮겨가는데
힘겹게 걸어 올라간 계단은
자꾸 새끼를 치고
오르는 발바닥에는
피멍이 들어
자국마다 피가 흥건하다
언제쯤이면 다시
내려 올 수 있을가
계단은 사라지고
몸은 허공에
서커스 배우 처럼
드리워져있다
이제 저 높은 곳에서
쾅하고 떨어질 일만 남았다
올라간 만큼
와장창 꿈은 깨지고
다시 올라야 할 계단이
아득히 뻗어있다
바람꽃
뿌리도 없이
형체도 없이
부산히도 떠돌며
언덕우의 나무 가장자리에
맑은 령혼 하나 불어넣고
피운 꽃이 꼭 너를 닮아서
이제나 저제나 떠날가 두렵구나
떠돌이 생을 숙명 처럼
령혼마저 풀어헤치고
가다가 지치면 또 앉아 쉴
나무 가장자리에
설익은 풋사랑을
서둘러 풀지 말고
그냥 쉬다만 가거라
너를 닮은 바람꽃을
이젠 그만 여기저기
뿌려두고
제발
그냥 니 근성대로
떠돌다 가려무나